[기자수첩]백로, 흰 이슬의 위로

  • 전국
  • 부산/영남

[기자수첩]백로, 흰 이슬의 위로

  • 승인 2025-09-07 10:30
  • 김정식 기자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새벽 논두렁에 맺힌 흰 이슬은 작은 요정의 숨결처럼 반짝인다.

여름 내내 쏟아진 폭풍우와 수해를 견뎌낸 땅 위에서, 그것은 농부의 마음을 쓰다듬는 가장 부드러운 손길이다.

올해 경남 곳곳의 7월은 극한 호우로 집과 논밭이 허물어지고 사람들 마음까지 깊게 패였다.

무너진 둑과 쓸려간 토사 위에 다시 햇살이 들자, 곡식은 쓰러진 채로도 알을 맺고, 나무는 꺾여도 끝내 새싹을 틔웠다.

자연의 광폭함은 두렵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은 흔적은 다시금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역사 속에서도 흰 이슬은 늘 회복의 신호였다.

삼한의 제사장들은 백로 무렵에 곡식이 익는 것을 보고 신의 뜻을 읽었고, 조선의 농서 《농가월령가》에는 백로를 수확의 때로 기록했다.

폭풍과 흉작의 공포가 있어도, 결국 이슬은 다시 내려 풍요의 계절을 열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백로의 요정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계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 곧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씨를 뿌리고, 비바람과 해충의 시련을 견디며, 마침내 알곡을 맺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은 인간이 만든 제도나 장치보다 더 크고 깊은 위로를 건넨다.

어떤 농부들은 말한다.

무너진 논두렁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고, '아직 이 땅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는다고.

그것은 위로이자 다짐이며, 동시에 다시 쟁기를 잡게 하는 신비한 힘이다.

백로의 흰 이슬은 결국 작은 요정의 눈물과 같다.

울부짖는 농부의 곁에서 함께 흐르고, 기쁨의 순간에는 반짝이며 웃는다.

그 존재는 극한의 재난마저 부드럽게 녹여내며, 다시 시작할 힘을 남긴다.

새벽 논두렁에서 반짝이는 이슬을 바라보면 깨닫게 된다.

무너진 마을과 꺾인 삶에도 여전히 작은 결실은 남아 있고, 그 결실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농부의 가슴에 뿌리내린다는 사실을.

백로의 요정은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견뎌냈으니, 이제 익어가라"고.
경남=김정식 기자 hanul30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피해자는 피눈물'...당진 학부모들, A시장 후보 아들 학폭 관련 '소명 촉구'
  2. '대전 인공위성 싣고 우주로' 누리호 5호기 조립 막바지…대전샛도 최종 검증중
  3. [비행과 범죄 경계 선 촉법] 만 14세 벽은 유지됐지만… 대전 촉법소년 범죄는 늘었다
  4. [세종시 동네공약 해부] 젊은층 생활인프라 수요 충족… 복컴·공동캠퍼스 공약 눈길
  5. “학교폭력 막겠다더니 선거 현장은 폭력?”
  1. 거대 정당 빠진 세종 여성단체 토론회… "민생 의제 검증 회피"
  2. [2026 기초·기본교육 언론 캠페인] “AI 시대일수록 사람다움” …체험 중심 인성교육과 놀이의 가치 결합
  3. 누굴 뽑을까?
  4. [춘하추동]과거의 기록에서 내일의 안전을 읽다
  5. ‘대전발전 적임자는 나’

헤드라인 뉴스


6·3지선 투표일 코앞인데… 공약서 미제출 후보 `수두룩`

6·3지선 투표일 코앞인데… 공약서 미제출 후보 '수두룩'

6·3 지방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충청권 단체장 후보 대부분은 선거공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선거공약서와 5대 공약은 선거법상 의무는 아니지만 유권자 알 권리 충족과 정책 검증 수단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마당을 살펴보면, 광역·기초단체장과 교육감 후보는 지방의원 후보와 달리 선거공보 외에도 선거공약서와 5대 공약을 유권자에게 공개할 수 있다. 이 중 선거공약서는 선거공보, 5대 공약과 별도로 후보자의 공약 세부 내용과 실행계획, 재원 마련 방안 등을 담은 자료다. 선심..

사전투표, 블랙아웃 돌입…충청 여야 부동층 흡수 지지층 결집 사활
사전투표, 블랙아웃 돌입…충청 여야 부동층 흡수 지지층 결집 사활

여야가 6·3 지방선거 최대격전지 금강벨트 판세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주요 변곡점을 앞두고 부동층 흡수와 지지층 결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29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28일부터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 아웃' 기간 돌입을 앞두고 필승 전략 마련에 촉각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여야 지도부는 각각 '정부 지원론'과 '정권 심판론'을 선거 프레임을 띄우고 있다. 충청권은 전국 민심 바로미터인 만큼 금강벨트 선거판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전..

이 대통령,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2년차 비전 제시
이 대통령,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2년차 비전 제시

이재명 대통령이 6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연다. 취임 30일과 100일,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네 번째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27일 브리핑에서 "국민주권정부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국정 2년 차의 비전과 주요 과제를 소상히 밝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기자회견의 키 비주얼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빛'과 모든 국민이 함께 걷는 '길'로, 이 대통령은 질의응답에 앞서 취임 1주년 기념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회견은 100분으로 예정돼 있지만, 다소 길어질 수 있으며 내외신 기자 1..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발전 적임자는 나’ ‘대전발전 적임자는 나’

  • 누굴 뽑을까? 누굴 뽑을까?

  •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꼭 투표합시다’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꼭 투표합시다’

  • 야구인 만난 허태정 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 만난 이장우 후보 야구인 만난 허태정 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 만난 이장우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