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태안 마애삼존불의 포근한 미소

[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태안 마애삼존불의 포근한 미소

제20회 백화산성(白華山城-태안읍 동문리)

  • 승인 2017-11-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태안마애삼존불
백화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서해안까지 내려온 금북정맥 끝자락에 있다. 비록 280m의 낮은 산이지만 인근에서 가장 높고 서해안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두루 관망된다. 상단부는 자연 암반으로 바위와 나무가 어울려 수려한 경치를 이룬다.

산성은 그 정상부인 태을봉(太乙峰)에 암반들을 활용하면서 세워졌다. 그 안내에는 둘레가 764m, 군지에는 976m로 각각 달리 기록돼 있다. 전체적으로 서남쪽으로 낮게 경사진 동서 타원형에 가까운 테뫼식 석성으로 북동이 높고 남서가 낮으나 현재 북쪽 상당 부분은 군시설로 접근이 불가하다.



성은 태을암으로부터 약 100m 위 지점에서 7, 8부 능선을 테를 두르듯이 외성을 돌렸다. 비록 외축은 대부분 붕괴됐지만 뒤채움석이 흙과 섞인 채 남은 부분에서 성의 자취가 발견된다. 그로부터 다시 약 칠팔십미터 정도 9부 능선상에 본격적으로 석축 원형(原型)의 일부가 남,동으로 둥그스럼하게 10여 단씩, 길이 이십미터 정도 확실히 잔존해 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정상부를 원형(圓形)으로 내성처럼 조성됐다. 내성은 잔존 석축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암반으로 구성된 가운데 부분적으로 흙속에 묻힌 뒤채움석들이나 보축부 석재들이 간간 남았고 외축은 거의 망실된 상태다. 내성 안은 비록 암반 위지만 상당히 넓고 평탄하여 장대지, 건물지 등 시설이 존재하기에 적합하다. 그 일부에 봉수터가 현존한다. 이 부분의 잔존 성벽은 40×25㎝ 정도로 잘 다듬어진 석재들을 바른층쌓기, 들여쌓기 기법으로 축성했다. 잔존 성벽 가운데 양호한 지점에 절단부가 있는데 아마 수구부 구실을 한 듯하다. 외성의 서-남-동벽은 모두 붕괴돼 삭토부 윤곽만 숲속에서 겨우 발견되는 정도이며 등산로 조성 등에 사용된 성돌들만 곳곳에 산재한다. 태을암쪽 진입로 안쪽 습기가 있는 곳에 고기록에 나타난 우물지가 있었음 직하다. 성벽은 암반지대에 설치됐고 서쪽 능선을 제외하고 사방의 경사가 심하며 사주 경계가 원활하여 상당히 깊숙이까지 뻘지대였던 서해 중심 방어거점으로서 이 산성의 임무는 막중했으리란 추측은 무리가 없으리라 추측된다.

환여승람(環輿勝覽)에 '고려 충렬왕13(1287)년 4면 절벽에 축조하고 안에 우물 두 개가 있었으나 모두 폐기됐다', '둘레 2042, 높이 10척 今廢'(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으로 보아 표면상 고려말 왜구 방어를 위해 축조됐다가 후일 평지성인 태안읍성이 그 임무를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시설로는 태을암쪽에서 오르는 능선 입구-서문, 정상부 동편 능선으로부터 내성 성벽 사이로 지그재그로 진입하는 동문, 북쪽 능선에서 내성으로 진입하는 곳의 북문 등이 문지로 추정되며 기타 동문지 옆 수구, 봉수대와 고대지 외에 추정 우물지 등을 찾을 수 있다.

태안문화원의 「태안의 석기문화」에 따르면 삼국시대 것으로 편년되는 회색 경질토기편들이 과거에 수습됐다 하는 바 이번 답사에서도 동문지 근처에서 황갈색 기와편들이 발견됐다. 태을암(太乙庵)의 마애삼존불상은 축조 시기가 6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이곳이 백제시대 중국의 문물 도래지라는 점 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점들은 잔존 성벽의 모습들과 더불어 삼국 특히 백제시대로 이 성의 축조 시기를 추정 가능케 하며 후대 읍성의 조성 후까지 외적에 대비 활용됐던 것이다.

태안마애삼존불은 서산마애삼존불처럼 여전히 후덕하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코와 일부는 여러 가지 헛된 속설에 넘어간 사람들에 의해 파손되거나 떼어져 버려 곰보부처님 같기도 하고 한센 병환자 모습이 돼 버렸지만 백제불의 속성과 마음만은 오랜 시간 속에서도 잃지 않았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도 표현됐을 것이다. 연화대를 밟고 선 통통한 몸에 늘어진 승복의 곡선이 부드럽다. 여늬 마애불들과는 달리 두 주불이 좌우에서 지키듯 작은 관음보살을 가운데에 두고 감싼 모습이 참 다정하고 자애롭다. 중국쪽으로부터 들여왔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재창조해 냈다는 백제인들의 예술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위해 조성했다느니 하는 말들은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될 듯하다. 변덕스런 인간들이 구실을 달아 각종 시설물을 설치했다 부수고 다시 고친 흔적들은 오히려 부스럼 같다. 때로는 그저 자연스레 비바람을 맞으며 사계절 햇빛과 어울린 천연덕스런 그 모습들을 왜 가만 두지 못하는가. 삼불이 동쪽으로 향한 뜻은 무엇이며 석굴암 불상처럼 아침 햇살에 비칠 불그레한 얼굴 속 미소가 궁금하다. 불상 옆 감로수에 백화산 성지기들도 마른 목을 축이고 갔으리라.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3.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4.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5.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1.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2.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3. 헌법파괴 비윤리적 2025 인구주택총조사 국가데이터처 규탄 기자회견
  4. 홀트대전한부모가족복지상담소, 대전아동기관단체와 협약
  5. 온새미로 봉사단과 함께하는 사랑의 소규모 집수리

헤드라인 뉴스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전지역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도소매업의 경우 대출 증가와 폐업률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위한 금융 리스크 관리와 맞춤형 정책 지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대전지역 자영업자 수는 15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전의 자영업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가 차..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대전 유성구파크골프협회가 맹꽁이와 삵이 서식하는 갑천 하천변에서 사전 허가 없이 골프장 조성 공사를 강행하다 경찰에 고발당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 굴착기를 동원해 임의로 천변을 파내는 중에 경찰이 출동해 공사가 중단됐는데, 협회에서는 이곳이 근린친수구역으로 사전 하천점용허가가 없어도 되고 불법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4일 대전시하천관리사업소와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성구 탑립동 용신교 일대의 갑천변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굴착기가 땅을 헤집는 공사가 이뤄졌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 대덕구 상서동으로 넘어..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속보>=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운영할 '컨트롤타워'가 내년 상반기 내 설립될 예정이다. 국비 지원 중단 등 재정난 속 17개 주민 거점시설에 대한 관리·운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중도일보 보도에 후속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도일보 11월 19일자 4면 보도> 세종시는 24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보는 10년 차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5곳이 폐쇄한 작금의 현실을 고발하며, 1000억 원에 달하는 혈세 투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렁주렁 ‘감 따기’ 주렁주렁 ‘감 따기’

  •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