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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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관심

  • 승인 2020-05-28 10:21
  • 수정 2021-06-24 13:48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20200529 관심(예산 용동초 교사 양소연)
양소연 용동초 교사
수업을 마치고 업무에 열을 올리고 있던 어느 날 생각지 않은 메시지가 왔다. 발신인은 웃는 모습이 예쁜 우리 반 유나(가명)였다. 유나는 평소 나에게 고민을 자주 이야기 했었는데 그날의 문자 내용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곧바로 유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하고서도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 석찬이(가명)한테 고백 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한번 읽어 봐주세요?"

나는 예쁜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3가지 버전으로 메시지를 고쳐서 다음날 유나에게 고친 글들을 보여주었다. 유나의 표정에서 놀라는 모습이 스쳤지만 나는 나의 준비성을 감탄한 것이라 생각했다.

며칠 후부터 유나는 부쩍 우울해 보였다. 나는 아이가 걱정되어 석찬이를 불렀다. 석찬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유나 이야기를 했다.



"저는 지금 공부하고 싶다고 알아듣게 잘 이야기 했는데 얘가 우는 거 에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유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석찬이를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돼.'

그런데 그 문자를 보내자마자 유나에게 전화가 왔다. 유나는 다짜고짜 나에게 "선생님은 어떻게 상처받은 사람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라며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유나가 화가 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을 하며 유나 관련 자료들을 펼쳐보았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글자는 'INFP'.

나는 3월 초에 아이들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MBTI라는 성격유형검사를 했었는데 유나가 F(감정)형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석찬이의 성향을 보니 석찬이는 나와 같은 T(사고)유형이었다. T유형과 F유형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다음 날 유나를 불러 F유형의 특징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자 유나는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이 편해서 문자 봐 달라고 한 건데 선생님이 다 새로 쓰셔서 너무 상처받았어요. 그리고 고백을 했는데 석찬이가 내 마음은 물어도 안보고 자기는 공부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너무 슬펐어요."

나는 MBTI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사과와 설명을 함께하자 오해는 말끔히 해결되었고 우리는 모두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사용한 MBTI검사는 우리나라 교실에서 가장 쉽고 많이 사용되는 성격검사지만 이 검사가 다양한 사람들을 고작 16개의 유형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MBTI를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이 검사가 학생들에게 적용하기 쉽다는 점이고, 둘째, 이 검사가 학생과의 관계 형성에 첫 걸음이 되어줄 관심의 시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관심을 조금 더 유지했더라면 그 날의 문제 해결의 과정은 아마 조금 더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 간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갈' 수는 있지만 과연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관심이 빠진 관계는 지도를 읽지 않고 목적지만을 향해 달리는 자동차와 다름이 없다. 이런 경우 자동차는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거나 바다를 건너야 할지도 모른다. 그 역경을 이겨내고 도착했는데 도착지가 목적지가 아닐 수도 있다. '너'라는 올바른 목적지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관심이다.

이 일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한 번 더 바라본다. 한 번 더 바라보는 그 관심으로 나와 그 아이의 관계가 그만큼 더 돈독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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