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별볼일 없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만든 위대함

  • 문화
  • 문화/출판

[올랑올랑 새책]별볼일 없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만든 위대함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패터슨

  • 승인 2021-12-24 09:02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TL
▲게티이미지뱅크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는 영화속 죽은 시인을 추모하며 그들이 생전에 남기고 간 명시를 암송하는 모임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루던 당시 우리 사회에서 이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자유롭고 주도적인 대명사로 인식됐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시를 암송하는' 이 '죽은 시인의 사회' 모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도구가 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시절에는 약속 장소가 시내의 대형 서점일 때도 있었다. 몇 시께로 시간을 정하고 서점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옆에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에 서로의 존재를 직감하면 이내 읽고 있던 책으로 마저 집중한다. 언제 오는지 목을 빼며 기다리지도, 늦게 온다고 눈치를 주지 않고 그냥 '거기 서점에서 보자'고 약속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어느덧 죽은 시인의 사회를 지나 시가 죽은 사회가 됐다. 시를 읽기 보다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익숙한 시대에 시간과 공간과 시절과 사람을 담는 '시'는 쉬운 말을 일부러 복잡하고 어렵게 조합한 단어의 나열일 뿐이다. 서점에서 책 냄새 맡으며 책을 고르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집어 들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어려운 인간 관계'의 비법과 '우울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문구에 홀려 책을 주문한다. '내'가 문제인지, '네'가 문제인지, '지금 사회'가 문제인지를 분석하며 '그러니까 지금 내 문제는 사회 시스템적으로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그런 세상에서 시가 자리할 부분은 한 뼘쯤 되려나..



책1
▲바탕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그런점에서 보면 이번에 나란히 출간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정은귀 옮김, 민음사 펴냄, 420쪽), '패터슨'(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정은귀 옮김, 민음사 펴냄, 504쪽)은 생각지 못한 몽글몽글한 추억 한줌을 손에 쥔 것이나 반갑다.

T.S.엘리엇,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비트 제너레이션(패배한 세대, 미현대문학의 한 조류)에 큰 영향을 줬던 윌리엄스의 시집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윌리엄스의 시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다. 고향 리더퍼드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쓴 윌리엄스는 낙후된 고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 '별 볼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왔다.

'꽃의 연약함...'이 "한행도 무의미한 부분이 없다"로 평가 받았던 '원하는 이에게'에서 1938년까지의 작품을 담았다면, '패터슨'은 후기 작품들과 연작시 '패터슨'을 묶었다.
오희룡 기자 huil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