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물 좀 주소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물 좀 주소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2-04-04 08:4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소장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1969년 9월 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에 선 갓 스물한 살의 청년 한대수가 전주도 없이 느닷없이 토해내는 절규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당시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똑딱똑딱 울리는 시계 초침 소리로 청중들의 기대를 고조시킨 다음 향을 피우고 톱을 켜며 외치듯 전위적으로 노래했다.



무엇이 청년 한대수를 이토록 절규하게 했나. 그는 음악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의 배경에 대해 "답답한 나의 개인 생활과 우리 사회의 돌파구 없는 좁은 관념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한대수의 부친은 서울공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그가 7살 때 미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지 몇 해 만에 재가했다. 한대수는 할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는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 후 FBI의 도움으로 17살에 아버지를 찾았으나, 그는 한국어를 깡그리 잊어버린 채 백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어쨌든, 이때부터 다시 미국에서 아버지와 살게 된 한대수는 뉴햄프셔 대학 농대를 거쳐 뉴욕사진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 스튜디오에서 시간당 2.5달러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긴 방황 끝에 어머니의 부름으로 장발에 히피의 복장을 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가족의 기대와는 달리 무교동의 쎄시봉으로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과 조영남의 딜라일라에 이어 그가 노래를 부르자 관중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노래는 당시 팝 번안곡 위주로 서정적이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포크 음악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물 좀 주소’는 태평양을 오가며 사춘기를 보내야 했던 청년의 내면세계가 그저 뿜어져 나온 것인데, 유신정권은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금지곡으로 만들었다.

이제 한대수가 드라마센터에서 ‘물 좀 주소’를 부른지도 벌써 50년이 훌쩍 지났다. 군사독재 시절도 끝났고, 1인당 국민소득이 210달러이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면 지금 2020년대에는 숨 막히고 암울한 청년 한대수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

자식을 나 몰라라 내버려 두거나, 모양 빠지지 않게 좋은 대학만 강요하는 몰상식한 부모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기성세대들 모두가 청년들의 돌파구를 가로막는 좁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기존의 질서가 최선이라고 강요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유를 구속하려는 우리가 ‘물 좀 주소’를 금지곡으로 만든 그 시대 위정자와는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젊은이가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라고 절규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한 대수는 "록 음악의 본질은 반항이다. 10代 자체가 반항의 세월이며, 부모 시대의 체제와 가치에 대한 반항이다"라고 했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반항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좋은 반항이 되도록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넛지(nudge) 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대수는 지금 뉴욕에서 아내 옥사나, 딸 양호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매일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한때는 시신 보관 시설도 부족했어요. 모두 집에 다 갇혀 있고요. 식량을 사기 위해서는 오전 6시부터 줄을 섰어요. 가족의 식량을 구하는 것이 제 임무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심장에 기계를 달고 살면서도 72세이던 2020년 새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신곡 'pain pain pain'은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애가 없어진 것에 대한 고통을 노래했다고 한다. 그는 밥벌이를 사진 기술로 해결하면서도 항상 당대 가장 도전적인 음반들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뮤지션이다.

뉴욕에서 딸 양호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로큰롤 할배’가 돼 가고 있는 한국 포크록 대부의 아름다운 도전을 응원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목마른 외침에 귀 기울이며.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의정부시, ‘행복로 통큰세일·빛 축제’로 상권 활력과 연말 분위기 더해
  2. [2026 신년호] AI가 풀어준 2026년 새해운세와 띠별 운세는 어떨까?
  3. '2026 대전 0시 축제' 글로벌 위한 청사진 마련
  4. 대성여고 제과직종 문주희 학생, '기특한 명장' 선정
  5. 세종시 반곡동 상권 기지개...상인회 공식 출범
  1.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2. 세밑 한파 기승
  3. '일자리 적은' 충청권 대졸자 구직난 극심…취업률 전국 평균보다 낮아
  4. 중구 파크골프協, '맹꽁이 서식지' 지킨다
  5.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24강 위기득관(爲氣得官)

헤드라인 뉴스


`영하 12도에 초속 15m 강풍` 새해 해돋이 한파 대비를

'영하 12도에 초속 15m 강풍' 새해 해돋이 한파 대비를

31일 저녁은 대체로 맑아 대전과 충남 대부분 지역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고, 1월 1일 아침까지 해돋이 관람이 가능할 전망이다. 대전기상청은 '해넘이·해돋이 전망'을 통해 대체로 맑은 가운데, 대부분 지역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겠다고 전망했다. 다만, 기온이 큰폭으로 떨어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야외활동 시 보온과 빙판길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31일 오전 10시를 기해 대전을 포함해 천안, 공주, 논산, 금산, 청양, 계룡, 세종에 한파주의보가 발표됐다. 낮 최고기온도 대전 0도, 세종 -1도, 홍성 -2도 등 -2~0℃로 어..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상권…주말 매출만 9000만원 웃돌아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상권…주말 매출만 9000만원 웃돌아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30일 소상공인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0대 직장인의 구..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서울 고척 돔구장 유형의 인프라가 세종시에도 들어설지 주목된다. 돔구장은 사계절 야구와 공연 등으로 전천후 활용이 가능한 문화체육시설로 통하고, 고척 돔구장은 지난 2015년 첫 선을 보였다. 돔구장 필요성은 이미 지난 2020년 전·후 시민사회에서 제기됐으나, 행복청과 세종시, 지역 정치권은 이 카드를 수용하지 못했다. 과거형 종합운동장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충청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고무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서다. 결국 기존 종합운동장 구상안은 사업자 유찰로 무산된 채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 행복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 세밑 한파 기승 세밑 한파 기승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