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와 공존]외면해서 안 될 일…강점기 대전 창작과 기록화

[한일교류와 공존]외면해서 안 될 일…강점기 대전 창작과 기록화

4.상처의 기록과 예술화
관사촌 살았던 일본인 마지막 세대
모형·지도 제작해 고향에서 기억 증언
조사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경험 더해져
뾰족집·보문산 별장 근대유산 재발견도
재조일본인 마지막 세대 줄고 기억도 쇠퇴

  • 승인 2022-12-07 17:38
  • 신문게재 2022-12-08 11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하기모토 형제 제작 모형
대전에서 태어난 하기모토 형제가 제작한 대전 소제동 제53호 관사 모형.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기록하는 과정에서 대전은 광복 이전의 대전을 마주 보게 됐다. 역세권 개발을 앞둔 동구 소제동과 삼성동, 인동, 은행동을 조사하다보면 언어와 문화가 다른 대전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종전과 달라진 것은 광복 이전 대전 근대역사에 눈을 감거나 부정하던 것에서 벗어나 그것마저도 정확하게 기록하고, 우리방식으로 당당히 창작한다는 것이다.



▲제53호 관사에 살았소

1945년 대전 소제동에 최대 70여 동의 철도종사를 위한 관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거주자 이름이 확인된 곳이 제53호 관사 하나다. 기관사 하기모토 신쿠마 씨가 아내와 2남 2녀와 함께 1945년 9월까지 이곳에 거주했는데, 하기모토 씨는 당시 가장 높은 등급의 아카츠키호 특급열차를 운전했다. 마당에는 작은 밭이 있어 토마토와 가지, 상추를 심었고, 담장 너머에서는 관사 구역 확장 위해 흙을 실어나르는 인부들로 북적였다. 마을에는 철도국이 운영하는 야구장이 있어 가장 활기 있는 장소였고, 우물에서는 여름이면 성환 참외를 식혀 먹곤 했다. 같은 해 9월 14일 이들 가족은 일본 귀환을 위해 대전역에서 부산행 화물차에 몸을 싣고 떠나면서 제53호 관사는 빈집으로 남았다.

하기모토 사진
하기모토 형제가 제작한 소묘와 대전역 지도 그리고 지점토로 만든 소제동 풍경.
제53호 철도관사에서 살았던 이의 생활사가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었던 것은 하기모토 마사히코(萩本 萩元正彦)·미치유키(萩元道行) 두 아들이 일본 귀환 71년만에 대전시의 학예연구사 앞에서 구체적으로 증언한 덕분이다. 이들 형제는 대전 학예연구사들을 만나기 위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관사 모형과 대형 지도를 준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형 하기모토 마사히코는 공작용 지점토를 사용해 철도관사 제53호 모형을 만들었는데 지붕을 들어 올리면 부엌, 거실, 화장실 등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 동생 미치유키는 대전역과 소제동의 철도, 도로, 강, 민가 등의 위치를 표시한 2m 너비의 대형지도 2장을 제작했다. 하기모토 형제는 경부선을 건너는 굴다리와 참새잡이 조선근로자들이 사용하던 지게, 지푸라기로 만든 계란 꾸러미 등을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과 모형 등은 그해 말 테미예술창작센터 리서치프로젝트 보고회에서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고토 가즈아키 일한시민네트워크 나고야 간사장은 중도일보와 만나 "하기모토 형제는 고향 대전에서 연구사들이 찾아온다고하니 고민한 끝에 이해하기 쉽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모형과 지도준비해왔던 것이고, 한국과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중도일보는 지난 11월 일본 취재 때 하기모토 형제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수차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새롭게 발견되는 의미들

대전 중구 대흥동 뾰족집(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은 철도국장의 집으로만 알려졌으나, 와타나베 이와지(渡邊岩治·1875~1946)가 철도국 퇴임 후 지은 것이라는 게 근래에 확인됐다. 2020년 한국비평문학회에서 발표된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사의 '일제하 대전 재조일본인들의 기록과 그 자리'에 따르면 와타나베는 부인과 함께 뾰족집에서 1남4녀를 키웠고, 1933년 대전고등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차녀 야스코가 병사하자 '헤이안'이라는 추모 가족문집을 발간했다. 와타나베의 증손녀는 2019년 8월 대전 뾰족집을 찾아 견학하고, 일본 후손들이 가지고 있던 기록과 사진을 대전시 측에 전달했다. 앞서 2016년 일한시민네트워크 나고야 회원들이 대전을 방문했을 때도 와타나베 가문의 또 다른 후손이 방문해 뾰족집이 철거 위기를 모면하고 지금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8월 '관정일본리뷰' 기고를 통해 뾰족집 증소년의 내한 소식을 소개하며 "증조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으나, 일본의 한국 침략과 통치에 가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리츠메이칸소장대전자료조사
대전시 안준호·고윤수 학예연구사와 목원대 이상희 교수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대전 관련 자료를 찾고 있다. (사진=대전근대아카이브포럼 제공)
최근에는 보문산 옛 보문사 승려들이 거주하는 요사채가 1931년에 지은 것으로 확인돼 문화재 등록을 앞두고 있다. 쓰지 만타로(십萬太郞·1909~1983)가 가족 별장 용도로 지은 것으로 그의 아들 쓰지 아츠시(84) 씨가 대전과 교류하던 중 증언을 하고서야 별장의 존재가 알려졌다. 시는 보문산 대사지구 재정비를 위해 사찰과 요사채 철거를 염두에 두고 부지를 마침 매입했고, 1930년대 주택의 건축요소가 담긴 시설이라는 게 확인돼 보존될 수 있었다. 쓰지 씨는 지난달 중도일보 인터뷰를 통해 "보문산 별장은 조선의 목재로 조선의 전통적 건축방식에 일본풍을 가미해 지은 별장으로 주변에 과수원을 가꾸고 병환 중인 할머니와 사촌이 요양차 방문하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대전출생 마지막 세대

2015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시작돼 지금은 대전문화재단이 이어가는 '지역리서치 프로젝트'가 대전의 근대역사를 연구하고 창작하는 무대가 되었다. 특히, 예술가들이 주체로 참여해 근대역사를 조사해 기록을 넘어 창작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또다른 대전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때 신미정 작가는 '신도(信道)'라는 작품을 통해 유성구 숯골에 정착한 수운교도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했고, 앞서 하기모토 형제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또 강점기 대전에 대한 조사·연구가 향토사 연구에 새로운 흐름으로 뿌리내렸다. 지난 10여 년간 소제동에 대한 조사와 활동사업을 주도한 이상희 목원대 교수를 비롯해 대전시 안준호·고윤수 학예연구사사 그리고 우송정보대 이토 마시히코 교수 등이 근대역사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리츠메이칸대학 평화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후지츄장유 쓰지 긴노스케가 당시 대전에 주둔 일본군 장교와 주고 받은 엽서형태의 1905년 대전역 사진을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다만, 대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일본인 마지막 세대가 감소하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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