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어려워도 정말 어려운 "내 탓입니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어려워도 정말 어려운 "내 탓입니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 승인 2022-12-19 08:4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김정태 배재대 영어과 교수(시사오디세이)
김정태 교수
연말을 맞아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의 '위령공편'에 있는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에서 유래됐다. 혹여 이런 풍조가 사회에 만연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수많은 할로윈 인파가 좁은 골목으로 몰려 150명이 넘는 귀한 생명을 잃었다. 국가적인 재난에 너무나도 놀랍고 가슴이 아프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가족들의 심정을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오늘,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경찰 조직 중 책임질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내 탓입니다!"라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한 선악과를 따 먹고서 남 탓으로 책임을 돌린 사건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학생들이 남 탓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에 지각한 것은 엄마가 일찍 안 깨워줘서 그렇고 숙제를 못 한 것은 선생님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나도 가끔 남 탓을 한다. 우리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 것은 나랏님 탓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사실로 믿어 버린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 아합왕은 자신과 왕비의 우상숭배와 폭정 속에 3년째 이어진 가뭄과 기근을 겪고 있을 때 선지자 엘리야를 만나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네가 왔느냐?"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려 버렸다. 이렇게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불쌍한 백성들이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물론 "이 사태의 책임은 내 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국정의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을 당연시했던 지도자들도 있었다. 한국전쟁 중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The buck stops here!)"는 문구의 팻말을 집무실에 놓았다. 이것이 그의 평생 좌우명이었다. 그는 실제 이런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거나 아니면 떠나라" 비슷하게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도 이 문구를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놓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도 책임지는 지도자의 품격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09년 네덜란드의 빔 콕 총리는 하나의 국제적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며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다. 1995년 보스니아에서 약 7500명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추후 이 사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와 유엔이 공동책임이 있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는데, 1주일 만에 콕 총리는 이 사태를 책임지고 내각 총사퇴를 단행했다. 당시 60세였던 콕 총리는 높은 인기로 연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학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치 지도자가 내각 총사퇴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내 탓입니다"라는 말에 인색하며 책임 전가에 급급한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 민족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는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객이다"라고 하셨다. 세상살이하면서 "내 탓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은 세상을 더욱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먼저 "내 탓입니다!"를 외치며 공동체와 개인의 죄를 반성하고 희생과 헌신의 본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국민의 호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이 마음 놓고 "내 탓입니다"라고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