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청춘을 위하여!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청춘을 위하여!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4-02-25 16:34
  • 신문게재 2024-02-26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교수
백낙천 교수
2월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문턱을 넘어가는 그 어디쯤에서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계절이다. 눈꽃 흩날리고 바람 끝은 아직 매섭지만 비어 있던 자리에 어느새 노란 꽃소식 전하는 1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은 그래서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바야흐로 2월의 대학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한 졸업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물론 졸업은 소정의 학업 과정을 마친 것이기도 하지만 영어의 'commencement'의 의미처럼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므로 긴장과 설렘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졸업생들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기꺼운 마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맘때 나는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후회가 밀려와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특히 이번 졸업생들은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입학하여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힘겹게 대학 생활을 보낸 세대들이다. 그래서일까?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시작할 졸업생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심란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 생활동안 추억할 여러 가지 고락들은 삶의 흔적으로 남아 그네들의 삶을 다채롭게 해줄 것이 분명한 것은 경험적 사실이지만, '지금 여기' 졸업생들은 장밋빛 미래의 설계보다 우선 당장의 냉혹하고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리 어떻게 할 도리 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내 마음은 갑갑하기만 하다. 디지털 활용 능력과 민감한 문화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임에도 당연히 지녀야 할 청춘의 패기와 당당함보다는 과열되고 소란스럽고 성공을 재촉당하는 시대의 불운 속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운 심정일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전한(前漢) 시대에 흉노족 왕의 아내로 선발되어 끌려간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다 한들 봄 같지가 않구나)이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구절이 지금의 시대상과 졸업생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 씁쓸하다.



돌아보니 30여 년 전 나의 삶도 지금의 졸업생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나의 대학 생활은 황량했으며, 기대할 미래나 기댈 만한 버팀목을 찾지 못한 그야말로 삶의 공황기였으며 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한 미망의 시절이었다. 시대의 빈곤과 미래의 불안을 도서관에서 달래고 채웠지만 늘 허기지고 목말랐으니 그 시절 성장통의 시간이 나를 키운 8할이었다.

그러니 청춘들이여! 대추 한 알도 그 안에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맞아 붉게 익는 것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통찰을 기억하고, 순응이 아니라 역풍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양력(揚力)으로 삶의 비상을 꿈꾸기 바란다. 그리고 긍정이 주는 무한한 힘을 돛대 삼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벗들과 함께 노를 저으며, 창공의 별을 등대 삼아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더욱이 공동체의 교양과 상식을 쉬지 않고 익히고, 시간이 주는 인고의 지혜를 터득하며, 겨울을 딛고 마른 나뭇가지에 새잎을 돋게 하는 약동하는 봄의 생명력과 복원력을 경이롭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문득, 나는 지난 학기 4학년 종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전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실린 우화인 한 노인이 보여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교훈이 새삼 떠오르면서,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청춘들이 인도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의 경구(警句)대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그리고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수심(修心)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진해 나아간다면 시대의 난관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4.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