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오십보 백보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오십보 백보

  • 승인 2024-07-10 13:35
  • 수정 2024-11-17 11:32
  • 신문게재 2024-07-11 18면
  • 강제일 기자강제일 기자
2024021301000858800033381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상편에 나오는 일화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제3대 군주인 양혜왕은 어느 날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던 맹자를 맞았다.

양혜왕은 그에게 "하내 지방이 흉년이 들면 하동의 곡식을 옮겨 하내 백성에 먹이고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면 또 같이하는 데 백성이 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맹자는 양혜왕이 좋아하던 전쟁에 빗대 답변했다.

그는 "전쟁 때 오십 보를 도망한 병사가 백 보를 간 병사를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었는데 왕께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양혜왕은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맹자는 "이를 안다면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맹자가 이처럼 양혜왕을 비꼰 이유는 흉년 때 백성을 도운 것이 결국 전쟁을 위한 행위라 봤기 때문이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여기서 유래했다. 우리말 도긴개긴과 같은 의미로 주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을 겨냥할 때 쓰인다.

요즘 정치권에선 이런 말이 딱 들어맞는 일이 생겼다. 원(院) 구성을 둘러싼 국회와 지방의회의 파행이 그것이다. 원 구성은 국회 또는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하는데 필요한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을 뽑는 행위다.

매번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원 구성을 놓고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이어졌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자리 중 11곳을 접수하고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이에 반발한 여당이 등원(登院)하지 않자 '무노동' '불법파업'이라고 십자포화를 날리면서 나머지 일곱 자리도 가져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원내에서 수적 열세에 있는 국민의힘은 어쩔 수 없이 야당 제안을 수용했다. 나머지 상임위원장 자리도 야당에 헌납해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해선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당은 '의회 독재', '거야 폭주' 등의 거친 표현으로 이전보다 부쩍 대야(對野) 공세 수위를 높였고 정국은 급랭했다.

원 구성을 둘러싸고 촉발 된 여야의 대립각은 채상병 특검법안으로까지 전선이 더욱 확대됐다.

22대 국회 개원에 앞서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절규는 여야의 정쟁에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여야 정쟁 탓에 민생의 시계가 멈춰 선 것이다.

원 구성으로 인한 잡음은 비단 국회뿐만 아니다.

대전시의회에선 다수당인 국민의힘 의원끼리 의장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었다. 의총에서 선출된 의원을 지지하는 당론파와 이에 불복하고 다른 의원을 밀어준 비당론파 간 갈등으로 의장선출이 파행을 겪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징계를 받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국회의 원 구성 파행 악습을 지방의회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주민은 피로할 뿐이다. 생활정치로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 힘써야 하는 지방의회가 되려 주민의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국회나 지방의회나 오십보백보, 도긴개긴이라는 비판이 이래서 나온다.

허구한 날 싸우는 정치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안 보이는가. 고달픈 삶에 지친 아우성이 안 들리는가.

국회와 지방의회는 더는 정쟁으로 민생의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국민이 이런 요구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도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강제일 정치행정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대산단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기존 전기료比 6~10%↓
  2. 국가철도공단 전 임원 억대 뇌물사건에 검찰·피고인 쌍방항소
  3.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4. 충남대 올해 114억 원 발전기금 모금…전국 거점국립大에서 '최다'
  5. 29일부터 대입 정시 모집…응시생 늘고 불수능에 경쟁 치열 예상
  1. 셀트리온 산업단지계획 최종 승인… 충남도, 농생명·바이오산업 거점지로 도약
  2. 한남대 린튼글로벌스쿨, 교육부 ‘캠퍼스 아시아 3주기 사업’ 선정
  3. 심사평가원, 폐자원의 회수-재활용 실천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상'
  4. "천안·아산 K-POP 돔구장 건립 속도 낸다"… 충남도, 전문가 자문 회의 개최
  5. 충남도, 도정 빛낸 우수시책 12건 선정

헤드라인 뉴스


불수능 영향?…대전권 4년제 대학 수시 등록률 증가

불수능 영향?…대전권 4년제 대학 수시 등록률 증가

2026학년도 대입 모집에서 대전권 4년제 대학 대부분 수시 합격자 최종 등록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황금돼지띠' 출생 응시생 증가와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불수능 여파에 따른 안정 지원 분위기가 영향을 준 것으로 입시업계는 보고 있다. 29일 지역 대학가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시 모집 합격자 등록을 마감한 결과, 대다수 대학의 등록률이 전년보다 늘어 90%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사립대학들의 등록률이 크게 올라 대전대가 93.6%로 전년(82.4%)에 비해 11%p가량 늘었다. 목원대도 94%로 전년(83.4..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서울 고척 돔구장 유형의 인프라가 세종시에도 들어설지 주목된다. 돔구장은 사계절 야구와 공연 등으로 전천후 활용이 가능한 문화체육시설로 통하고, 고척 돔구장은 지난 2015년 첫 선을 보였다. 돔구장 필요성은 이미 지난 2020년 전·후 시민사회에서 제기됐으나, 행복청과 세종시, 지역 정치권은 이 카드를 수용하지 못했다. 과거형 종합운동장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충청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고무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서다. 결국 기존 종합운동장 구상안은 사업자 유찰로 무산된 채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 행복청과..

‘충청내륙고속화도로’ 청주~제천 전 구간 개통
‘충청내륙고속화도로’ 청주~제천 전 구간 개통

충북도는 충청내륙고속화도로(57.8㎞) 3~4공구 잔여구간인 '충주시 대소원면 만정리(신촌교차로)'에서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봉양역 앞 교차로)'까지 17.4㎞를 30일 낮 12시에 추가 개통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충청내륙고속화도로 1-1공구(10.5㎞) 개통을 시작으로 잔여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충청내륙고속화도로는 2017년 첫 삽을 뜬 지 8년 만에 57.8㎞ 구간이 완전 개통됐다. 이처럼 충청내륙고속화도로의 큰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서 국토교통부와 충북도의 유기적인 협력이 주효했다. 총사업비 1조436억 원이 소요된 이 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