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갓 쓴 원숭이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갓 쓴 원숭이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승인 2025-05-06 09:31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2023082801010014786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목후이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초나라 패왕 항우 때의 일이다. 초한전쟁 시기에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수도 함양을 불살라 버리고, 초나라 팽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한생이라는 사람이 관중 땅이 토지가 비옥하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적합하다고 간했다. 한생은 항우가 수도 함양을 폐허화시키고, 초나라 팽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멍청한 일로 생각했고, 초나라 사람을 갓 쓴 원숭이에 비유했다. 한생이 간언한 관중 땅의 가치는 매우 큰데, 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초나라 사람들을 천박한 야만인에 비유한 것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초나라 원숭이놈 쯤으로 해석된다.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갓을 만지작거리다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 원숭이처럼 무식한 놈이 갓을 써봤자라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이 말을 들은 항우는 한생을 끓는 물에 내던져서 죽였고, 멍청하게도 팽성으로 돌아가 도읍을 삼아 몰락을 재촉했다고 한다.

항우의 라이벌하면 유방을 꼽는다. 유방은 중국 통일 후 주나라를 따라 수도를 낙양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때 듣도 보도 못한 평민인 누경이라는 사람이 면회를 신청하고, 수도 이전에 관해 조언을 해 준다. 조언의 내용은 주나라는 덕치를 강조하고 소통이 원활한 교통 요지인 낙양에 도읍했다. 당신은 덕이 아닌 전쟁으로 지도자가 되었고, 산과 들판이 해골로 가득찬 낙양은 좋지 않다. 반란이 일어나면 방어하기도 쉽지 않으니, 경제력이 좋은 관중으로 이전하라는 충언이었다. 충언의 내용에 유방이 덕이 아니라 전쟁으로 지도자가 된 사실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유방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유방의 장점은 누구의 의견도 수렴했고, 쓴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신하들과 소통해 결정했다는 점이다.

수도 이전과 관련해 항우는 자신만의 고집을, 유방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도모했다. 항우는 허울을, 유방은 실속을 챙겼다. 항우는 자신을 비난한 자를 죽였지만, 유방은 상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자신을 비난한 자를 죽인 인물치고 명군인 사람은 드물었다. 항우와 유방을 비교하면 리더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무총리가 사퇴하고, 경제부총리가 사임했다. 2025년 5월 2일 0시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가 됐다. 사회부총리인 교육부 장관의 대대대행 체제인 셈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 대행체제가 지속된다.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국무총리를 대행하는 체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쉽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혼란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제도 중에서 기본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삼권분립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기능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제도다. 어느 한 기관이 모든 기능을 갖게 되면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상호 견제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민주제도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국회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정치적 심판을 받고, 법 집행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5년마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직에 입문하는 구조이지,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부재하다. 법률적 전문성만을 강조하면, 국민과 괴리되고, 특권화되어 부패될 수 있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고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은 기관이 절차까지 무시한다면 사회 신뢰 체계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돼 있다. 이제는 국민 선택의 시간이지, 특정 기관이 국민보다 우위에 있는 시간이 아니다. 공직이라는 갓을 썼으면 국민 전체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인지해야 한다. 국민이 정한 절차를 지키고, 주권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대대행 체제가 됐으면 한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세종시, 전국 최고 안전도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