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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항우의 라이벌하면 유방을 꼽는다. 유방은 중국 통일 후 주나라를 따라 수도를 낙양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때 듣도 보도 못한 평민인 누경이라는 사람이 면회를 신청하고, 수도 이전에 관해 조언을 해 준다. 조언의 내용은 주나라는 덕치를 강조하고 소통이 원활한 교통 요지인 낙양에 도읍했다. 당신은 덕이 아닌 전쟁으로 지도자가 되었고, 산과 들판이 해골로 가득찬 낙양은 좋지 않다. 반란이 일어나면 방어하기도 쉽지 않으니, 경제력이 좋은 관중으로 이전하라는 충언이었다. 충언의 내용에 유방이 덕이 아니라 전쟁으로 지도자가 된 사실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유방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유방의 장점은 누구의 의견도 수렴했고, 쓴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신하들과 소통해 결정했다는 점이다.
수도 이전과 관련해 항우는 자신만의 고집을, 유방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도모했다. 항우는 허울을, 유방은 실속을 챙겼다. 항우는 자신을 비난한 자를 죽였지만, 유방은 상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자신을 비난한 자를 죽인 인물치고 명군인 사람은 드물었다. 항우와 유방을 비교하면 리더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무총리가 사퇴하고, 경제부총리가 사임했다. 2025년 5월 2일 0시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가 됐다. 사회부총리인 교육부 장관의 대대대행 체제인 셈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 대행체제가 지속된다.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국무총리를 대행하는 체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쉽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혼란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제도 중에서 기본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삼권분립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기능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제도다. 어느 한 기관이 모든 기능을 갖게 되면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상호 견제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민주제도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국회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정치적 심판을 받고, 법 집행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5년마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직에 입문하는 구조이지,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부재하다. 법률적 전문성만을 강조하면, 국민과 괴리되고, 특권화되어 부패될 수 있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고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은 기관이 절차까지 무시한다면 사회 신뢰 체계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돼 있다. 이제는 국민 선택의 시간이지, 특정 기관이 국민보다 우위에 있는 시간이 아니다. 공직이라는 갓을 썼으면 국민 전체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인지해야 한다. 국민이 정한 절차를 지키고, 주권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대대행 체제가 됐으면 한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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