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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소설가 |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지금 지구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의 논리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패권주의자로 넘쳐나고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넘어 21세기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하려나 했는데 각 나라마다 진보와 보수세력의 첨예한 갈등, 강대국의 패권주의 부활로 또다시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은 작년 12.3 내란 사태를 의회와 광장 민주주의가 힘을 합쳐 극복해 내었다. 전 세계에서 K-민주주의를 수출해 달라는 해프닝같은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광장 민주주의는 밀실에서 독재를 꿈꾸는 자들을 끌어내렸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다. 광장이 둘로 나뉘어 진영 간의 대립이 첨예화된 탓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거론하며 진영 간의 갈등이 진영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악용하는 독재자를 낳기에 유리해졌다고 한다. 오히려 사회통합은 민주주의국가보다 독재정권에 가까운 공산권 국가들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광장 민주주의는 꿈도 못 꾸게 만드는 사회통합이 아닌 통제 체계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나는 K-민주주의가 통제가 아닌 방식으로도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해프닝이 아닌 진정한 위상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얼마 전 '전,란'이란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권위와 안위를 챙기기에 급급한 차승원(선조 역)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예 신분으로 전장에 뛰어든 강동원(천영 역)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이다.
'전,란'에서 5백여 년 전 선조는 정여립의 '대동세상'에 대한 상소문을 펼쳐보며 "천민이나 노비나 누구든 왕이 될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대신들 앞에서 소리친다. 당대에 정여립의 사상은 능지처참형에 처해졌지만 오늘날 그가 꿈꾼 평민이나 노비나 왕이나 대동한 세상은 민주공화정치 체계로 완성되었다.
지난 5일 열린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박찬욱 감독은 영화 '전, 란'으로 영화부문 각본상을 받았다. 여기서 밝힌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차승원(선조 역)씨의 못되고 못난 왕 말고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할 거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과연 이번 대선에서는 진영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을 무서워하는 대통령이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지성명을 들여다 보다 'OOO을 대통령이라는 도구로 쓰고자 한다.'란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도구로 쓰겠다는 이 '도구론'은 앞으로 K-컬쳐가 담아내야 할 콘텐츠이면서 이 시대 대통령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도구로서 대화와 타협, 미래지향적 성취에 충실한다면 첫째 과거의 과실을 들추어 진영 간의 갈등을 부추기지 않을 것이고, 둘째 상호견제의 삼권분립을 존중하여 자신의 행동을 조심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사회통합은 이뤄지고 K-민주주의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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