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먹는다는 것의 의미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먹는다는 것의 의미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5-05-21 17:04
  • 신문게재 2025-05-22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40901000785700030931
김홍진 교수.
마당 한 귀퉁이 다 찌그러진 양푼이나 이 빠진 사기그릇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 찌꺼기를 대충 뒤섞어 던져주던 게 개밥의 원형이다. 개밥은 개의 먹이라는 의미 외에 짬밥과 함께 질낮은 형편없는 음식을 비하할 때 쓰는 비유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 급격한 신분 상승으로 개밥은 맛과 영양은 물론 씹을 때 경쾌한 소리까지 세심히 배려한 균형 식품으로 제공된다. 항간에 조폭이 근육 단련을 위해 개 사료를 먹는다는 우스갯말은 개와 개밥의 위상 변화를 환기한다.

세계 인구 11%에 해당하는 약 7억 명 이상이 절대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을 감안하면 개팔자 상팔자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고 말했지만, 일본의 헨미 요는 〈먹는 인간〉에서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 비록 살아 있다고는 하나 정상에서 배제된 열외인간 '호모 사케르'(조르주 아감벤,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들에게는 먹는 게 생존을 위한 절박한 사투이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산해진미의 맛 기행, 팔자 좋은 호사가의 미식과 포만은 가난과 기아, 분쟁과 배고픔이 없는 행복한 풍요를 구가한다. 이런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다른 맥락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 그야말로 개밥만도 못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비참을 찾아 나선 기행이 〈먹는 인간〉이다. 이 르포르타주는 미식과 포만, 음식이 가진 문화인류학적 상징을 탐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매우 예외적인 슬픈 맛 기행이다. 오직 생존을 위해 썩은 악취로 구토를 유발하는 개밥만도 못한 음식과 종교 윤리적으로 금지한 대상을 요리해 먹을 수밖에 없는 극한의 굶주림에 집중한다.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헨미 요는 세계 곳곳에서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정치, 사회,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며, 넘치는 미식과 풍요의 세기에 사람들은 얼마나 못 먹을까? 분쟁은 또 먹는 본능을 어떻게 짓누를까? 따위를 사유한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개보다도 못한 밥을 먹는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선향(線香) 냄새 진동하는 뒷골목 포장마차 쟁반에 볶음밥 브리야니와 닭고기 등등이 쌓여 있다. 구토를 유발하는 이 역겨운 음식들은 부자들이 먹고 버린 찌꺼기로 만든 것이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 키탄그라드 산속 동료와 산 아래 주민을 잡아 인육을 먹은 일본군 패잔병, 내전이 한창인 유고 자그레브에서 돼지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이슬람교도 등등…. 이쯤에서 음식이 지닌 신성성과 인간 존엄성은 무참하게 무너진다.



브리야니, 식인, 돼지고기 등등은 음식이 지닌 상징적 가치의 파괴라는 동일 지정의 의미다. 서로 다를 게 없는 의미를 내포한다. 헨미 요와 마찬가지로 먹는다는 행위의 정치, 사회, 역사적 의미와 인간 생존 본능을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이 으뜸일 것이다. 앙가주망의 효시라 해도 무방할 이 그림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게 만드는 부패한 정치권력의 무능과 탐욕이 빚은 참상의 비극을 그리기 때문이다. 헨미 요의 이르포르타주는 마치 제리코의 그림을 알몸의 언어로 풀어낸 것과 진배없다.

음식은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이룩한 것, 신성한 상징이다. 인간만이 음식에 생존이나 영양을 초월한 상징 가치를 부여한다. 그런 까닭에 음식의 신성함과 인간 존엄성은 비례한다. 이 등가 관계의 파괴는 대개 정치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헨미 요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첨언하면 마들렌 한 조각을 홍차에 담아 입술에 가져갔을 때, 어릴 적 맛과 향으로부터 '나'였던 본래의 '나'를 다시 찾는 프루스트와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을 무색하게 한다. 그럼에도 음식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게 해주고 영혼에 위로가 되는 것도 없다.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