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취득하는 학생 선택권 제도 자체는 이상적이다. 그러나 설계가 부실했고 기본적인 철학마저 겉돈다. '문재인표' 대선 공약이던 이 제도는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가 전제돼야 맞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2028년 수능에서 9등급 상대평가 체제 유지로 전환했다. 수능과 고교학점제 간 정책 엇박자의 대표적인 예다.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선행학습에 매달리는 모순적 상황은 해결해야 한다.
준비가 덜 되다 보니 지역별·학교별 교육 격차를 크게 벌린다는 점도 허점이다. 제도 안착을 위해 지역 교육청과 대학 등이 손잡는 건 당연히 할 일이다. 이 경우도 학교 밀집도가 낮고 지역사회 협력체제 구축이나 공통수업 진행이 힘에 부치는 농어촌 지역은 특히 문제다. 전반적으로 교사는 업무 부담, 학생은 수업 부담이 만만치 않다. 수능시험 범위가 아닌 교과의 선택권 딜레마는 어찌할 텐가. 장점인 진로와 적성은 뒷전인 채 사회적 합의 없이 급히 밀어붙인 결과를 고스란히 보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덮고 '안착'은 어렵다. 대입과 관련해서는 대학의 자유전공, 무전공 선발 확대 등 괴리와도 만난다. 이대로 가면 진로보다 입시에 맞춰 쉬운 과목을 택하는 경향은 더 또렷해진다. 당면한, 그리고 예견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 성장과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학생 선택권 보장 및 맞춤형 교육은 고교학점제의 뼈대다. 취지와 달리 실험적 제도로 전락한 듯한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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