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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정치행정부 기자 |
그러나 대전·세종 시민에게 이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산업부, 중기부, 특허청 등 각종 정부기관을 품고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대의 아래 도약을 준비해온 이 지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의 칼날을 조용히 감내해왔다.
예고도, 논의도 없이 조용히 이전된 사례들도 적지 않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경기 과천에서 경기도 안산으로,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식량과학원 일부 부서는 세종이 아닌 전북 완주로 각각 옮겨졌다. 이처럼 국정철학이나 거시 전략과는 무관하게 개별 부처나 기관 단위로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일도 빈번했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늘 앞세워졌지만 실리는 정작 다른 지역에 돌아가는 일이 반복돼왔다.
해수부는 세종청사 입주 이후 수도권 부처들과의 협업 속에서 해양정책을 조율해왔다. 물론 해양산업의 중심지로서 부산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부처의 이전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원칙과 어긋난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그로 인한 허탈감은 세종과 충청 시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충청권은 수년간 선거 때마다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약속을 들어왔다. 세종시 출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희망과 기대를 걸어왔고, 그 기대는 행정수도라는 이름 안에 오랜 시간 쌓여왔다. 그러나 현실은 늘 절반의 완성에 머물렀고 이제는 오히려 부처 하나를 잃게 될 처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이번 발표가 주는 실망감도 결코 작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연설에서 "국민을 지역과 성별, 세대로 나누지 않겠다"며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해수부 이전은 그 다짐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특정 지역에 힘을 실어주는 상징적 정책이 또 다른 지역에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부산의 해양 산업을 육성하는 목적은 분명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본부 이전이 아닌 권한의 분산, 조직 간 유기적 협업 강화 등도 충분히 가능한 대안이다. 세종이 축적해온 행정 경험과 시스템이 이대로 사라져선 안 된다.
세종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통령 제2집무실은 여전히 임시 공간에 머물고 있고, 국회 세종의사당은 계획만 무성한 채 입법과 예산 확보조차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가균형발전을 말한다면 지금은 세종의 기능을 덜어내기보다 채워나가야 할 때다.
균형발전은 어디에선가 빼앗아오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옮기는 정책'이 아니라 '정착시키는 정책'이다. 세종과 충청 역시 국가 운영의 중심축이라는 점을 정부가 다시금 기억해주길 바란다.
최화진 정치행정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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