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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일본 이시바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내용을 보면서 27년 전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공동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두 경우 모두 경제, 문화, 인적 교류를 전면에 내세워 한일관계가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협력의 길을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세부 내용 중에는 일본유학을 희망하는 한국 이공계열 학생들을 선발해 일본 각지의 국립대 이공학부에서 수학할 수 있게 학자금을 포함해 한일 양국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필자도 당시 유학생으로 제1기 김대중 장학생(정식 명칭은 아니었으나)들을 멘터링했던 적도 있었다. 필자가 귀국 후에는 국내언론에서는 관련 소식을 들을 기회가 없었으나, 이 프로그램으로 학부를 마치고 무사히(?) 박사 학위까지 받아서 국내 유수의 기업에 취업한 졸업생의 전언으로는 수년에 걸쳐 총 1000여 명의 학생이 배출됐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 수혜 유학생들과 주위의 평판도 좋았지만, 한일 두 정상의 의기투합이 보여준 한일 협력의 선례라고 판단된다. 현재도 여전히 한일관계는 미묘하지만, 당시의 한일관계도 과거사 정리 및 미래지향적 협력 기회가 필요했던 시점이라, 정치 철학과 경험이 풍부했던 두 정상 간의 전향적인 논의로 마련된 전기로 실질적 성과도 거두었다고 평가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무상을 경험했고, 정치인으로서도 원만했던 오부치 총리가 뇌경색(일본 지인들은 부지런한 총리가 과로사했다고 안타까워했음)으로 쓰러지면서 양국에서는 결이 다른 정치지도자들로 교체되고,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역사 인식 갈등, 첨예한 안보 이해 충돌 등으로, 진전되는 관계라기보다는 답보·퇴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30여 년 전과 지금의 한일관계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정치, 경제 역량으로만 봐도 그 무게 중심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공통으로 상호 안보에 기반을 둔 외교전략, 기술 협력을 통한 경제효과, 사회문화적인 교류 상승작용 등을 통한 공동 국가이익으로의 전략적 접근법은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협의에서도 과거의 '역사와 화해'에서 '미래와 공동번영'으로의 중심축은 이동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상호 지향적 협력을 강화하는 세부 실행 안들이 나오고, 또 이 안들의 실질적 결실이 있길 기대한다. 수소에너지, AI, 기후위기대응과 같이 유효한 과학 분야의 기술협력 안도 좋겠고, 고령화 사회, 출산율 저하, 수도권 집중과 같은 사회현상을 먼저 겪은 일본과 차별화된 정책수립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류를 통한 K-Culture 확산도 필요할 것이다. 한일 양국 지도자들에게 이전 김대중-오부치 시대의 '진정한 사과'와 '용기 있는 화해'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과거의 교훈을 되새겨, 양국의 미래지향적 비전 공유하는 새로운 관계 정립을 기대해 본다. 똑부 스타일의 대통령께서 굳이 일본을 거쳐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은 것은 일본과의 관계가 한미관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한미일 3각 협력의 중요성은 우리의 역사 속에 온전히 각인된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고, 이런 전략적 공조를 계기로 북한, 중국, 러시아와의 새로운 외교의 국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에서 입바른 말처럼만 된다면야 어디 이처럼 쉬운 외교 관계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게도 못하고 안되는 경우가 많았구나 싶다. 리더의 스타일을 똑부, 똑게(똑똑하지만 게으른), 멍게(멍청하고 게으른), 멍부(멍청한 데다 부지런)로 나눈다던데, 우리나라와 같은 국제관계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대통령이 좋을까? 아무리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사람의 운명처럼 행운이 작동한다 해도 멍청한 리더는 아니지 않을까?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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