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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섭 교수 |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최초로 제안한 정책이라고 하는데 1968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파리의 대학체제 개편을 참조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프랑스에서도 대학 간 서열화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고 그해에 있었던 학생혁명이 전체적인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대학 시스템도 바꿔놓고 말았다. 그 결과 대학 이름이 갖는 고유명사를 떼고 번호를 붙여 대학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이 정책이 모두 성공했는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여전히 대학 이름 번호 뒤에 고유명사가 따라다니고 대학별 인기학과와 대학 간 차이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학 서열화를 완화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렇게 추진했으면 좋겠다. 우선, 짧은 기간을 정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권마다 대학을 혁신하겠다고 엄한 기준을 정해 일률적으로 평가하다가 성과에 집착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다음 정권이 또 다른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에 팽배해있는 구조적인 모순들을 제거해야 해소가 가능한 일이기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하게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둘째, 혁신은 정부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주체적으로 발전 전략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예산과 정책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간 정부가 일률적인 평가지표를 들이대고 대학은 이에 맞추어 점수를 얻고자 무리한 목표를 설정한 후 결국 달성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정원감축과 통폐합이라는 지표 등에 집착하면 무리가 따르고 결국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셋째, 지역 대학 간 상생방안도 함께 마련하여야 한다. 이미 RISE 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발전과 연계해 대학을 지원하는 정책이 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지역거점국립대에만 편중하는 정책추진은 지역 균형발전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 지역에 있는 대학들은 지역사회와 긴밀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이 망하면 지역사회 생태계도 같이 무너진다. 그렇다고 경쟁력 없는 대학을 억지로 살리자는 것은 아니다. 지역 대학들도 생존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쓰고 있는데, 확보한 정체성과 강점을 가지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혁신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
넷째, 지역에는 지역거점국립대만 있는 게 아니라 지역중심국립대도 있으므로 이를 위한 지원방안도 함께 마련하여야 한다.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1도 1국립대' 방침으로 지역별로 국립대를 통합해 재편하는 정책을 가동하거나, 아니면 지역중심국립대가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특성화를 지원하는 정책도 동시에 추진하여야 한다. 국립대학을 광역 거점으로 묶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거나 특성화를 바탕으로 대학 혁신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는 길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AI로 대표되는 교육혁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대학교가 변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큰 도전이자 기회임이 분명하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막는 방식으로 대학을 지원하던 정책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해 전체적인 예산을 늘려서 대학의 변화를 지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응원하고 박수를 보낼만하다. 다만, 각론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정부들이 성공하지 못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자세히 살피고 대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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