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언론과 미디어 정책, 전리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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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언론과 미디어 정책, 전리품 아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5-09-22 11:20
  • 신문게재 2025-09-23 18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이승선
이승선 충남대 교수
트럼프의 등장과 집권 이후 미국의 주류 언론사들이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는 2024년 CBS에 200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CBS 간판 프로그램인 '60분'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한 방송을 했다는 이유다. CBS는 올해 7월 1,6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돈으로 22억 원 정도다. CBS의 모기업 파라마운트사가 헐리우드 제작사 스카이 댄스와 합병을 앞두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그 승인을 미적거리고 있었다. 트럼프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디즈니 계열사인 ABC를 상대로 트럼프는 작년 12월 1,500만 달러의 손해배상 합의금을 받아냈다. 트럼프의 성추문 관련 재판 소식을 전하면서 방송사 앵커가 사용한 용어를 문제 삼았다.

최근에는 ABC와 NBC를 일컬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미디어라고 비난하면서, 연방통신위원회가 이들 방송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의 주류 언론 공격은 그침이 없다. 그와 친분이 있던 성범죄자 엡스타인과 관련한 보도가 허위라며, 월스트리트 저널에 10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뉴욕 타임즈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을 이유로 1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21조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을 담당한 연방법원 판사는 트럼프의 대리인들에게 소장을 다시 작성,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소장에 불필요한 정치적 주장이 과도하게 담겨 있고, 분량 역시 지나치게 길며, 모호한 혐의를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수·합병의 승인, 방송 면허와 같은 한 국가의 미디어 정책을 한낱 대통령 선거의 전리품 정도로 하찮게, 그리고 교묘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처사들이다.

한국은 어떤가. 현재 정부와 여당은 방송과 통신을 담당해 온 기존의 조직을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 조직을 만들며, 기존의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추석 전'이라는 처리 시점도 여러 번 제시됐다. 외형과 수사는 거창하지만, 실질은 현행 방송통신위원회를 '조금 살짝' 뜯어고치는 정도로 비친다. 최민희 의원의 '방통위법 개정안'과 김현 의원의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법 제정안'을 바탕으로 한 대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른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법' 제정안이다. 과기정통부의 일부 유료 방송 정책 기능을 가져오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장을 정무직으로 하여 인사 청문과 국회 탄핵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존의 방통위 공무원은 새 조직에 승계되도록 하되, 정무직인 위원장은 제외한다는 내용을 부칙에 규정해 야당 등으로부터 '아무개 축출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존 방통위법의 가장 큰 문제는 방통위를 대통령이 장악할 수 있도록 구조화했다는 점이다. 방통위법은 최소한 대통령과 여당이 방통위와 방통위 산하의 공영방송사, 방송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대통령실 소속인 방통위의 5인 위원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3명의 위원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 몫에 대통령이 소속된 당이 포함되므로 위원 구성은 대통령·여당이 3명을 차지한다. 다수결에 의해 정책 결정이 이뤄지므로 대통령이나 여당의 뜻은 언제든지 관철될 수 있다. 최민희 의원안, 김현 의원안, 과방위 대안 등 3개의 법률안 모두 대통령에 의한 위원장과 의원 지명, 그리고 집권 여당의 추천 위원을 합한 숫자의 비율이 기존 방통위의 3대2 위원 구조와 다름이 없다.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언론3학회가 대통령 선거 전과 선거 후에 새 정부가 수용하기를 바라는 언론과 미디어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윤 정부의 언론정책에 공식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전 승리의 공신들이 제시한 정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을 받아서는 안 될 내용들이 많이 담겼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법률안 논의에 학회의 제안은 반영되지 않은 듯하다. 방통위든, 시청각미디어통신위든, 방송미디어통신위든, 대통령과 여당이 위원회를 지배하는 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2008년 이후 17년간 반복돼 온 방송 통신 영역의 정책 대립과 파행을 피할 길 역시 없을 것이다. 동시에 법률이 어떻게 바뀌든, 이 영역의 지배·통제권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도 있을 터이다. 민주 국가의 백년대계가 담겨야 할 언론과 미디어 정책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선거전의 승자가 누리는 전리품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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