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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교수 |
서울대 조용환 교수는 저서 '교육다운 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은 시간을 견디고 사회를 견딘다"고 말한다. 교육은 유행이나 정책 변화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에 뿌리를 둔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지난 수십 년간 역대 정부가 '교육 개혁'을 외치며 본질보다 제도 개편에 집중해 왔다. 5년 단임제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체제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등이 대표적이다. 매번 교육 개혁의 화두가 등장했지만, 개혁은 더뎠고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적었다. 오히려 냉소만 깊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방향이 불분명하다는 의문을 낳는다.
교육 개혁의 성패는 제도적 강제나 재정 투입이 아니라 현장의 교사, 학생, 학부모, 대학이 얼마나 성찰하고 동의하며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의 뿌리를 충분히 분석하지 않은 채 거대한 처방부터 내리면 정책은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개혁이 실패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작 교육의 당사자들은 외면한 채 구조와 제도만 손보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혁을 주창하는 이들은 정작 자신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는 오만으로 저항의 대상이 됐다가, 결국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됐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 정책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예컨대 20여 년 전부터 자동 통번역기의 발전으로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떤가? 2017년 수능 영어 절대평가 이후 학생들의 학습량은 줄었고, 대학 진학 후 영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늘었다. 취업 단계에서는 대다수 기업이 여전히 토익 점수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해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AI 통번역 기술의 발전은 '영어를 안 배워도 되는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어 역량의 격차'를 확대했다.
이 문제는 우리가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의 오류를 드러낸다. 우리는 진학, 취업 등 교육의 기능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그러나 기능은 본질이 아니다. 교육은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성찰과 대화, 경험이 축적되는 느린 시간의 영역이다. 영어 교육의 본질 역시 언어를 통해 세계로 나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본질보다 기능을 우선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화려해 보이지만, 서울대의 진짜 경쟁력은 시설이나 이름이 아니라 오랜 학문 전통, 교육철학, 교수진의 연구, 지역사회와의 연계에서 나온다. 지역대학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울대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립 이념에 따라 그 대학답게 키우는 것이다.
AI 시대일수록 교육의 본질은 더욱 중요하다. 기술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판단하고 삶과 연결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아무리 AI 기술 중심 개혁이 중요해도, 교육의 본질이 흔들리면 어떤 교육 정책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이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교육다운 교육의 회복이다. 교육 정책은 본질을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제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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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