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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
95세까지 매일 테니스를 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졌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어 96세부터 심장이 약해지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심장이 피를 돌게 할 힘이 빠져 몸이 붓고 숨이 차오르면 입원해서 치료하다가 좋아져 집에 돌아오면 다시 숨이 차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병마에 지친 송원장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나를 보내줘.” 그 때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선배님 쾌유하시라'며 정성을 다해 주신 김희수 총장과 건양대병원 의료진에 감사드린다.
며칠 전에 어릴 적부터 친구인 신화식 사장의 어머니 정혜자 여사가 돌아가셨다. 10여년 간 많은 지병으로 고생하셨지만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셨고, 마지막 2주 정도는 숨이 많이 차는 고통을 겪으셨다고 한다. 인공호흡기는 달지 않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산소를 입으로 1분 당 15씩 투입하며 견디셨다고 하니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송전무 원장과 정혜자 여사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행 법규는 생명의 존속 여부에 대해서는 당사자 아닌 그 누구의 의사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0여 년 전에 일어난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이 법적인 판단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보라매병원 사건이란 치료비가 없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남편을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겠다는 부인을 용인한 의사에게 실형을 내린 일을 말한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집으로 보낸 것은 '살인행위'라는 것이 검사의 기소 이유였다. '각서'를 받은 것도 법정에서 용인되지 않았고, 결국 집행유예로 결말을 맺었지만 법은 본인의 의사가 없다면 누구도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살 때 잘 살고 싶은 것만큼이나 죽을 때에도 잘 죽고 싶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한 마디와 함께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거꾸로 하면서 죽고 싶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많은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거나 '자고 나니 돌아가셨더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가족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돌볼 가족의 손이 부족해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가족 간 불화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외국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사례가 제법 있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회생의 기미가 없는 환자가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 얼굴들을 보면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뜻은 잘 알지만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머리를 맞대고 중의(衆意)를 모으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다보면 우리 실정에 맞는 방법도 생길 것이다.
사는 방식과 살아온 길에 따라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죽는 일'만은 평등하고 동등한 문제이기에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잘 죽고 싶다. 존엄사를 허(許)하라!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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