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우리는 나를 위해, 또한 가족과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일을 하는 장르는 다양하다. 그리고 고단하며 힘들고 때론 지치기도 일쑤다. 하지만 피를 파는 경우까진 없으리라. 여기에 피까지 팔아서 가족을 부양한 남자가 있다.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허삼관 매혈기>는 피를 파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낸 중국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더 팔고자 피를 팔러 가는 날엔 아침을 먹지 않고 몸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플 때까지 물만 실컷 마신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볶은 돼지 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신다. 다음에 또 피를 팔기 위함에서다. 이 책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음은 물론이다.
#2
박주선 국민의 당 의원을 실물로 처음 본 건 지난 4월 4일이다. 신문과 방송 등의 언론으로만 접하다가 그날 박 의원을 근처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대전충청권 선출대회’에서였다.
취재를 하고자 찾은 그날 대전충무체육관에서는 기호 1번에 안철수, 2번은 박주선, 3번엔 손학규 후보가 무대에 올라 사자후를 뿜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들의 연설을 귀에 쏙쏙 담으면서까지 경청하기보다는 ‘정치인들은 다 그렇지 뭐…’라는 따위로 대충 듣고 보면서 사진에만 열심히 담았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그 박주선 의원과 연관된 가슴 시린 과거사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1의 글과 같은 ‘매혈’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3
6월 24일자 J일보에는 인터뷰 형태로 박주선 국회부의장을 취재한 글이 게재되었다. 여기서 박 의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장사한다고 집을 나가 20년 동안 행방불명이 돼 버렸다. 이 바람에 어머니가 두 아들을 키우느라 안 해 본 장사가 없었다. 나의 중학교 입학금은 어머니가 피를 팔아 마련했다. 동생은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박 의원 어머니의 고생은 그것이 종착역이 아니었다. 시골을 다니며 계란과 콩.팥. 쌀 등을 사서 광주에서 파는 열차 행상을 했으며 그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자 어머니도 같이 상경해 청소원과 식모살이까지 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부분을 접하는 순간 <허삼관 매혈기>가 떠오르면서 눈가에 이슬을 맺히는 걸 제어할 수 없었다. ‘역시나 그처럼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아들 또한 동량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이었구나!’
박주선 의원이 이를 악물며 공부하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았는가 하면 사법시험 역시 수석으로 합격한 이면엔 그처럼 존경받아 마땅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89세인 어머니는 여전히 치매를 앓고 계시다니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사랑이 뭐냐고 뭐냐고 물을 땐 ~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 ~ 사랑할 때는 눈물이 나도 사랑할 땐 참아야 하지 ~ 남자 여자가 사랑할 때는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지 ~ 사랑 사랑 사랑이 뭐냐고 물을 땐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 ~” 태진아의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라는 가요다.
이 노래를 소구(訴求)한 까닭은 이 가요의 내용처럼 ‘남녀의 사랑’엔 아들과 어머니 역시 포함되는 때문이다. 다만 앞으론 그 모자간의 사랑에 있어서 눈물은 사라지고 웃음과 행복만이 가득했음 하는 바람이다. 박주선 의원의 노모께서 건강하시길 응원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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