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1987년 헌법과 1989년 맞춤법, 그리고 개헌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최충식 문화칼럼]1987년 헌법과 1989년 맞춤법, 그리고 개헌

  • 승인 2018-01-10 10:58
  • 수정 2018-01-10 11:59
  • 신문게재 2018-01-10 22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186964180
헌법의 문제점이 234건이 된다는 맞춤법과 표현 오류에서 또 터질 줄은 몰랐다. 국립국어원이 전체
최충식
최충식 논설실장

136개 중 111개 조항에서 발견한 오류에는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처럼 딱 떨어지는 것도 있고 오류 같지 않은 오류도 있다. 헌법 제72조, 53조 4항, 130조 2항의 '붙이다'는 '부치다'의 혼동이 아니다. 어법상 국민투표에 '붙이는' 시절에 헌법을 만들었다. '붙이다'와 '부치다'는 생판 다른 단어가 아니다. 말의 족보를 파고들면 역사적인 근원이 같다.

이런 유(類)의 최근 논란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현행 헌법 공포 이후 30년을 끌어온 논란거리였다. 헌법 전문 '각인(各人)'이 '개인(個人)'이라는 주장은 그 이상이다.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참고해 제헌헌법을 초잡은 유진오의 육필 원고를 직접 봐도 그렇게('各人의 機會를 均等히 하고') 적혀 있다. 초안을 쓴 해방 직후에는 어색하지 않았다. 70년 동안 방치하니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경중을 가리면 일제강점기에 법학을 공부한 법학자는 거의 무죄다. 9차례 개헌 내내 스리슬쩍 붓 터치만 한 우리 죄가 무겁다. 다만 이오덕 식으로 4조 '민주적 기본질서'의 '적(的)'까지 빼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법률용어도 하나의 전문용어다. 그리고 언어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진짜 착각은 어법이 틀리면 마구 교정하면 된다는 우리 상식이다. 맞춤법을 위한 헌법 수정도 '개헌'에 해당한다.

헌법 개정은 또한 용어를 넘어 시대정신이 충돌하는 1987년 체제 청산과 맞물린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지방자치와 지방의회 운영 근거만을 규정한 117조, 118조의 느슨함이 지목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 경우, 1조나 2조쯤에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에 속한다' 등으로 규정해야 한다.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뤄진다'고 못박은 프랑스 헌법 제1조 1항은 괜찮은 본보기다.

최고의 법인 헌법의 오류 범벅은 맞춤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새우리말 큰사전'을 보면 '붙이다'의 3번째 뜻으로 '일을 어떤 대상이나 과정으로 넘기다. 심의에 붙이다. 표결에 붙이다'라고 풀이한다. 이것이 바뀌어 '붙다' 의미가 살면 '붙이다', 안 그러면 '부치다' 정도로 정리된다. 어쨌든 헌법 개정 시점의 표현이 구식 표현이 됐다. 법조인 책임이나 국어학자 과오가 아니며 국회의원이 무식해서도 아니다. 영화 '1987'의 소재인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을 거친 6월 항쟁의 산물인 헌법은 6·29선언과 전두환 7·1담화로 불붙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개정됐다. 체육관 선거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얻은 것만도 감격스러운 성취였다.

위계가 아닌 시간 순서로 보면,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헌법은 1988년 2월 25일 시행됐고 1989년 1월 19일 개정된 한글맞춤법은 1989년 3월 1일 시행됐다. 물론 이것이 단 19%만 온전한 헌법 조항에 대한 면피는 되지 못한다. 조사나 어미, 문장 구조의 어긋남, 엿가락같이 들러붙은 띄어쓰기, 지시어 오남용, 능동과 피동의 혼선 등으로 얼룩진 헌법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다. 헌법 130조 2항에 따라 '국민투표에 붙여(부쳐)' 문법적으로 깔끔하게 고치는 일이 남아 있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111개 조항에 나타난 234건의 맞춤법 오류도 1987년 체제 극복의 당위성에 추가된다.

 

사 진

 

최충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절반의 성공·국힘 예상외 선전… 내란청산·정권심판 팽팽
  2. 국민의힘 백성현 후보, 52.63% 논산시장 재선 성공
  3. 새벽에 뒤집힌 대역전극 환희와 눈물이 교차했던 대전교육감 당선 순간
  4. 대전교육 최우선 과제는 '학교 안전·학교 급식·교권 회복'
  5. [한화에어로 참사] "사고 재발 방지 이행 여부 확인"…경찰, 사업장 압수수색
  1. 세종교육 새 수장 '강미애' 그는 누구인가
  2. '서산지역 충남도의원 선거 판 뒤집혔다' 서산, 더불어민주당 모두 석권
  3. 교육계·시민사회, 새 교육감들에 주문 "현장 변화로 답해야"
  4. [대입+] 6월 모평 국어·영어 쉬워지고 수학 비슷… 체감 난도는 엇갈려
  5. 생명연, 암세포 내성 약화시키는 기제 발견…항암치료 효과 회복 가능성

헤드라인 뉴스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타지에서 일하는 아들 생각 나서 더 마음 아파요." 5일 오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유성구청 1층 로비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은 이같이 말했다. "20대 희생자도 있다는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걱정됐다"라며 "남 일 같지 않다. 젊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더는 없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로 근로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유성구청은 오는 25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당진시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안민학 애도문 및 백자명기'를 국가 지정 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에 나선다. 시는 6월 5일 충남도 문화유산 안민학 애도문의 국가지정(보물) 승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8년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민학 애도문은 안민학 선생이 부인을 여의고(1576년 5월 10일 병자년) 관에 넣은 부장품으로서, 한글로 쓰인 16세기 애도적 내용의 편지다. 애도문은 1978년 소유자가 14대 조모인 현풍 곽씨 묘를 충..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2027년 4월 3일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제1회 섬비엔날레가 3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충청남도와 보령시가 공동 설립한 섬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행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위는 2026년 3월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전시, 행사 운영, 홍보, 교통·숙박, 안전관리 등 분야별 실행체계를 구체화했다. 4월에는 관계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협력 기반을 마련했으며, 5월에는 자문위원을 위촉해 전문가 의견 수렴 체계도 갖췄다. 전시 분야에서는 24개국 70여 명의 참여 작가 섭외와 작품 콘셉트, 설치 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