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간첩사건 재구성]평온한 마을서 울린 '그날의 총성'

  • 사회/교육
  • 미담

[부여간첩사건 재구성]평온한 마을서 울린 '그날의 총성'

석성리서 3차례 총격전 끝 검거… 故 장진희·나성주 경사 값진 희생

  • 승인 2014-10-23 17:55
  • 신문게재 2014-10-24 5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 부여경찰서 황수영 경위가 부여 석성리에 조성된 경찰충혼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 부여경찰서 황수영 경위가 부여 석성리에 조성된 경찰충혼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1995년 10월 24일 충남경찰 부여경찰서 경찰들은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에 나타난 무장간첩 2명과 총격전을 벌여 1명을 생포하고 군에 의해 1명이 사살됐다. 부여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 경찰 2명이 희생된 지역경찰의 희생을 김동식의 책과 경찰 증언으로 재구성했다.

#1. 1995년 10월 24일 무장간첩 김동식(당시 33세)은 조원 박광남과 함께 대전에서 부여행 버스를 타고 석성면 정각리에서 정각사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1980년 남파돼 스님으로 위장한 고정간첩 '봉화1호'를 접선하라는 지령을 받았지만, 왠지 가기 싫었다.

며칠 전에 '봉화1호'를 찾고자 부여와 공주 마곡사에 수소문해봤지만,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전향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김동식은 점퍼 안주머니에 든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을 의식하며 빠르게 걸음을 뗐다.

#2. 그날 충남 부여경찰서 황수영(31) 순경은 M16소총을 들고 트럭 적재함에 올라 정각사를 향해 출발했다.

그날은 매년 하는 독수리훈련 첫 날이었기 때문에 연습상황으로 생각했으나, 칼빈과 M16소총 그리고 실탄까지 지급되자 심각한 일이 발생했구나 직감했다.

황 순경이 탄 트럭 안에는 장진희(30)·나성주(28) 순경과 송균헌(30) 경장이 함께 있었고, 긴장한 눈빛으로 말없이 카빈총을 끌어안았다.

#3. “꼼짝말고 손들어.” 간첩 김동식은 '아차, 걸렸구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정각사에서 봉화1호를 접선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스님으로 변장한 건장한 사내가 15m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분명히 경찰이거나 정보기관원일 것이고 봉화1호가 남한 수사기관에 전향해 우리가 접근할 때를 기다렸던 게 분명했다.

19살의 나이에 대남공작원에 선발돼 4년간 방학은 물론 외출·외박·면회 없던 금성정치군사대학과 군사훈련 받았던 날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김동식은 손을 드는 척 오른손을 안주머니에 넣어 권총을 꺼내는 순간 '땅' 총소리가 울렸다.

#4. 부여 정각사 석성저수지에 잠복한 황 순경은 총소리가 난 곳에서 남성 2명이 뛰어가는 걸 목격했다. 한 명은 석성저수지 둑을 타고 넘어갔고, 다른 한 명은 100m 앞선 나성주·송균헌 조원과 총격전을 벌인 후 뒤따라 도주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총을 겨눠 지나던 트럭을 세워 운전석에 타는가 싶더니 곧바로 차를 버리고 반대편 산으로 모습을 감췄다.

황 순경은 어느새 부여~논산간 4번 국도를 넘어 그들이 도주한 방향으로 뛰고 있었고, 한 발 앞에는 장진희 순경이 있었다.

#5. 총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김동식은 박광남과 함께 멈춘 트럭에 올라타고 키를 돌렸다.

김동식은 1990년 5월 남한에 1차 침투해 정보수집과 포섭활동을 벌인 후 그해 10월 북에 복귀할 때까지 체류한 경험이 있어 남한 도로에 익숙했다. 또 지난 9월 남한에 2차 침투 후 서대전역을 통해 대전 유천동 여인숙에서 머물렀고, 서구 도마동 도솔산 아래 2곳에 숨겨둔 무전기를 꺼내 북에 상황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트럭에 시동은 켜지지 않았고, 그사이 경찰 총격소리가 가까워졌다.

#6. 무장간첩이 숨어들어 간 수풀 속으로 장 순경과 황 순경은 조심히 걸어 들어갔다.

박광남이 산 위로 도주하는 것은 목격됐으나 김동식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장 순경이 수풀을 헤치며 오른쪽으로 꺾으려는 순간, 웅크린 김동식이 빼어든 권총이 햇빛에 비쳤다. 황 순경이 동시에 사격해 김동식의 종아리를 관통시켰지만, 장 순경은 김의 권총에 복부를 맞고 쓰러졌다. 황 순경은 무장간첩 김동식을 향해 몸을 던져 수 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김을 제압할 수 있었다.

#7. 2014년 10월 23일 부여 석성리 경찰충혼탑에 선 황수영 경위는 동료 고 장진희·나성주 경사에 묵념을 올렸다.

고 장 경사의 아들은 현역 군인으로, 고 나 경사의 딸은 대학 경찰학과 학생으로 성장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황 경위는 “두 경찰의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며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무장간첩이 나타났던 것처럼 안보사건은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르포] 트램 공사에 시민 불편 가중…경적·호루라기 뒤엉키고 민원 잇따라
  2. 대전시 문화예술 기관장 인사 '설왕설래'
  3. [편집국에서] 이러다간 둔산광역시 되겄슈
  4. 대전시 李정부 첨단산업 정책 잇단 배제 위기감 고조
  5. [논산다문화] 논산시, 탑정호의 밤, 빛과 음악으로 물들다
  1. "횡단보도 하나 두고 탄방"… 둔산 14구역 '둔산동 편입' 움직임
  2.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3. 대전시의회, 민인홍 인사청문회… '직무능력·전문성' 검증
  4. 대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국비 또 험로…환아 느는데 정부 지원 '반토막'
  5.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기업이 대학 안으로… 충남대가 다시 짜는 첨단산업 교육

헤드라인 뉴스


조상호 세종시장 "부처·기관 이전 시 종사자 특공 부활해야"

조상호 세종시장 "부처·기관 이전 시 종사자 특공 부활해야"

조상호 세종시장이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 등 부처·기관 이전과 대비해 이전 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의 부활을 예고했다. 세종시에선 과거 중앙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할 당시 아파트 분양 물량의 최대 70%까지 공무원과 기관 종사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제도를 운영했지만, 특혜 논란 끝에 2021년 폐지된 바 있다. 시는 제도 보완을 전제로 대규모 부처·기관 이전이 이뤄질 경우 특별공급 부활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이미 정부와 관계기관에 의견을 제안해 협의를 본격화하도록 대응하고 있다. 조상호 시장은 7일 세종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

7월 휴가 시즌에도 지갑 닫은 충청지역민... 대형마트 판매액 감소세 여전
7월 휴가 시즌에도 지갑 닫은 충청지역민... 대형마트 판매액 감소세 여전

어려운 경기 상황과 내수 부진으로 충청 지역민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고 있다. 가계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줄이는 게 먹거리인데, 휴가시즌이 시작된 7월에도 대형마트 소비액 마이너스 기조가 계속되면서 불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7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최근 대전·세종·충남지역 실물경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7월 지역 대형마트 판매액 지수(매장면적 3000㎡ 이상)는 일제히 마이너스로 마감됐다. 지역별로 보면, 대전의 대형마트 판매액 지수는 1년 전보다 7.2% 하락했다. 6월 -14.6%를 기록하며 마..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본격 추진... 남북축 연결 기대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본격 추진... 남북축 연결 기대

대전 유등천변을 따라 남북축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망인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민선9기 출범 후 재정여건을 고려해 보류됐었지만,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속도를 내게 됐다. 대전시는 7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허태정 시장과 박용갑 국회의원, 시구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 기본설계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사정교~한밭대교 도로개설사업'은 중구 사정동 사정교에서 대덕구 오정동 한밭대교까지 연장 7.61km 구간에 왕복 4차로, 폭 20m 규모의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병 반대’

  •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에 대형 꿈돌이·꿈순이 등장

  •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