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개념 사회에서의 사법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개념 사회에서의 사법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3-20 09:28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손종학 01086489915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언제부터인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에 관하여 소신 발언을 하거나, 경제적 약자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을 향해 '개념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연예인 중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개념 있는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붙여 이들의 주장에 호응하고 응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개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기본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으로, 철학적으로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으로 정의되고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정치학개론, 법학개론 등과 같이 교과목 이름에 '개론'이라는 명칭이 붙은 수업을 많이 듣게 됐다. 그런데, '개론'이라는 뜻이 "어떤 학문 따위의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 서술한 내용"이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개론 과목들은 저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인 전공 수업에 앞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 듣는 과목들로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일종의 입문서 내지는 개괄서로서의 의미로 나름 이해했다. 이러한 관념이 젊은 시절부터 형성된 연유 때문이었을까? 연관어인 '개념'이라는 단어도 '전문성, 심층성과 같은 영역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그저 일반적인 생각이나 사고'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처음 '개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거북함이 들었고, 더 나아가 훌륭한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개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점점 이 말이 주는 긍정적 의미를 깊이 느끼게 됐다. 각자의 주장이 난무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좀처럼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일진대, 이를 해결할 길은 결국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고, 이런 생각을 갖춘 소위 '개념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인간사 갈등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갈등 자체를 미리 방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념 있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개념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추구할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갈등 해결의 사회적 도구인 법도 사회 구성원의 일반적인 행동기준을 정한 것이기에, 이 개념이라는 의미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법률가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들이 찾아갈 곳은 법전이 아닌 네 이웃으로, 그들에게 물어서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판결하면 그것이 옳은 판결일 수 있다는 오래전 들은 법언의 참뜻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법률가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일 처리를 해야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분쟁 해결의 최고의 기준은 누가 뭐래도 법률 조항이고, 판례와 법리임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진리이다. 그러나 법적 전문성에만 머무르지 말고 일반 시민들의 보통 생각, 평균적 정의감이라는 개념성도 잊지 말고 이들 양자를 조화롭게 구사하여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길이 바로 법이 사회와 소통하는 길이요, 법률가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갈 때 땅에 떨어진 사법 신뢰성에도 겨우내 언 땅에 봄기운 스미듯이 새봄이 올 것이다. 개념 인간들이 넘쳐나는 개념 사회에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전문성을 유지하는 한편 개념까지 겸비한 지혜로운 사법의 봄이 꽃 피기를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절반의 성공·국힘 예상외 선전… 내란청산·정권심판 팽팽
  2. 해수부, 중국과 해운 회담으로 현안 합의
  3.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4. 천안 수신멜론축제 6~7일 개최
  5. 천안법원, 주차장서 음주측정요구 거부한 혐의 40대 남성 징역형
  1. 천안의료원, 아산 더골든케어요양원과 MOU 체결
  2. 해양사고 선박의 30%, 기존 행위 반복… 예방책 없나
  3. 백석문화대, K-뷰티 실무 인재 육성을 위해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와 MOU 체결
  4. 한기대, 산업현장 문제 해결 초점 졸업연구작품전시회 '주목'
  5. 백석대 소셜비즈니스융합전공, 고려인 후손 돕기 모금 캠페인 전개

헤드라인 뉴스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타지에서 일하는 아들 생각 나서 더 마음 아파요." 5일 오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유성구청 1층 로비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은 이같이 말했다. "20대 희생자도 있다는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걱정됐다"라며 "남 일 같지 않다. 젊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더는 없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로 근로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유성구청은 오는 25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당진시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안민학 애도문 및 백자명기'를 국가 지정 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에 나선다. 시는 6월 5일 충남도 문화유산 안민학 애도문의 국가지정(보물) 승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8년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민학 애도문은 안민학 선생이 부인을 여의고(1576년 5월 10일 병자년) 관에 넣은 부장품으로서, 한글로 쓰인 16세기 애도적 내용의 편지다. 애도문은 1978년 소유자가 14대 조모인 현풍 곽씨 묘를 충..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2027년 4월 3일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제1회 섬비엔날레가 3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충청남도와 보령시가 공동 설립한 섬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행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위는 2026년 3월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전시, 행사 운영, 홍보, 교통·숙박, 안전관리 등 분야별 실행체계를 구체화했다. 4월에는 관계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협력 기반을 마련했으며, 5월에는 자문위원을 위촉해 전문가 의견 수렴 체계도 갖췄다. 전시 분야에서는 24개국 70여 명의 참여 작가 섭외와 작품 콘셉트, 설치 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