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7-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과수원 주인아저씨가 일을 하다가 과수원 울타리 옆에서 돌미나리를 채취하고 있는 할머니께 그걸 뜯으면 안 된다고 하니 대꾸 반응으로 나온 말이었다.



"왜 돌미나리를 뜯으면 안 된다는 게요?"

"과수원에 독한 농약을 엊그제까지 여러 번 했는데 거기는 과수원 턱밑이라 농약이 많이 묻었을 겁니다. 그래 그 돌미나리를 잡수시면 위험합니다."



돌미나리는 과수원에서 살포하는 농약 덕분인지 무성하게 자란 것이 욕심이 날 정도 탐스럽고 싱싱해 보였다.

할머니는 과수원 주인이 하는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돌미나리를 열심히 뜯고 있었다.

당신네 집에서 잡수실 것이 아니라는 말로 보아, 아마도 유성장날이나 아니면, 늘 하던 것처럼 거리에서 전을 벌이고 팔 욕심으로 무심코 나온 이야기 같았다.

이 할머니는 유성 장대동 사시는데 보기에는 촌티가 나고 어수룩해 보이셨다.

할머니는 지명(知命)의 나이에 미망인이 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사신 분이셨다.

자식이 있을 법도 했지만 자식 얘기가 나오면 왠지 낯빛을 고쳐가며 다른 말로 피하는 걸로 보아 수상쩍은 면도 좀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미망인이 된 후 10년 정도는 유성 장대동 조그만 밭뙈기에 농사짓는 재미로 사셨다. 또 거기서 생산된 야채며 검정콩이랑 마늘이랑 조, 오이, 호박, 가지 같은 것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셨다.

가엾은 할머니의 사정을 아는 인근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데로 가지 않고 할머니 농산물을 팔아 주었다. 가엽기도 하지만 워낙 순박한 할머니여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파시는 야채와 나물이랑 검정콩이랑 마늘은 일찍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 인기였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도 같았다.

순박해서 거짓말을 못할 것 같은 어수룩한 할머니가 손수 농사지은 무공해 농산물이라는 말에 더욱 믿음이 갔으리라.

물론 직접 농사지은 거란 말로 입소문을 낸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웰빙식품을 선호하는 요즈음 사람들이라 무공해로 직접 농사지은 국내산 곡식에다 야채라니까 갖다놓기가 무서울 정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거기다 외모로 풍기는 촌티에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까지 가세하여 더욱 믿음이 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촌티 나는 할머니의 소탈한 모습과 순박해 보이는 얼굴 모습은 아무라도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거기다 신토불이 농산물이란 입소문까지 나돌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꼬박 곧이듣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지 할머니는 제법 적잖은 단골손님까지 확보가 되어 장사가 제법 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고생한 지 10년째부터는 제법 짭짤한 수입으로 돈푼께나 모으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하루하루 돈 버는 재미에다가 돈맛까지 알아가는 깍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돈맛을 알게 된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는 원래의 순수 모습이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이었다.

돈맛을 알아서인지, 매력을 끌게 했던 촌티와 어수룩해 보이던 그 순수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이런 변화 속에 할머니가 거짓말까지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 같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세속에 물드는 것이 할머니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안타까웠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선하고 정직하게만 살아서는 각박한 세상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할머니는 언제부터인지 터득한 게 틀림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것과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할머니한테도 근묵자흑(近墨者黑)의 동화가 의심의 여지없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세월의 어두운 그림자 무게에 휘둘리는 인간의 무력함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언제 이렇게, 나와 가족만을 행기고 위하는, 매정하고 냉냉한 기계가 됐단 말인가!

나와 내 가족만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걸 먹고 어떻게 돼도 상관없단 말인가!

노파는 돈맛을 알게 된 후 그 순수와 따뜻했던 가슴마저 얼음장이 돼 가고 있었다.

돈 맛들인 주머니가 불룩해진 뒤에는 할머니는 사람들한테서 받던, 그 소중한 신뢰가 어디론가 다른 데로 옮겨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할머니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온혈 가슴도, 연민의 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불티나게 팔리던 마늘이랑 검정콩도 어느 날부터인지 찬밥 신세가 돼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편리요, 기계화된 세상이라지만 사람의 가슴까지 기계가 돼서는 쓰겠는가!

이제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신뢰도 잃고, 돈도 잃고, 따듯한 가슴의, 모든 사람들까지 잃게 되었다.

신뢰하는 맘으로 무조건 사주던 검정콩, 머위, 마늘도 사가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부자가 돼가던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고, 거지가 돼가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바로 할머니가 뿌린 씨를 열매로 거두는 부메랑이 아니겠는가!

불신의 씨앗을 뿌렸으니 거두는 것이 인정으로 사랑으로 거둘 수 있는 열매가 열릴 수 있겠는가!

장날 검정고무신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온 검정콩 한 되, 마늘 한 접을 머리에 이고 나와 팔며 흘리던 촌 아낙의 미소가, 마음 한 구석이, 왜 이리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아니, 속이지 않고 살던, 그 아낙의 마늘 한 접, 콩 한 됫박을 믿고 사 주었던, 영화 속의 장면 같았던 향수 어렸던 추억이 왜 이리 마음을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이건 우리 먹을 게 아닌 데요."

새겨볼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요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제발 할머니가 어수룩하게 살던 그 가슴으로 새로운 부메랑을 만들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방승찬 ETRI 원장 연임 불발… 노조 연임 반대 목소리 영향 미쳤나
  2. 대전·충북 재활의료기관 병상수 축소 철회…3기 의료기관 이달중 발표
  3. 대전 촉법소년 일당 편의점 금고 절도·남의 카드로 1천만원 금목걸이 결제
  4. 소규모 지역의대 규모 확 커지나…교육부 대학별 정원 배분 계획에 쏠린 눈
  5. 세종시 식품 기업 16곳, 지역사회 온정 전달
  1.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 전달
  2. 정왕국 에스알 신임 대표이사 취임
  3. 정보통신공제조합, 470억 들여 세종회관 건립 "상반기 첫 삽"
  4. '세종·충북' 통합 뜬금포...특별법 제정 해프닝 그쳐
  5. ‘어려운 이웃을 위한 떡국 떡 나눠요’

헤드라인 뉴스


‘통합법’ 법안소위 통과… 여 단독처리 야 강력반발

‘통합법’ 법안소위 통과… 여 단독처리 야 강력반발

대전·충남 행정통합법이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의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당의 졸속처리를 규탄하면서 논의 자체를 보이콧 했고 지역에서도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강력 반발하며 국회 심사 중단을 촉구했다. 정치권에선 입법화를 위한 7부 능선이라 불리는 법안소위 돌파로 대전·충남 통합법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행정통합 찬반 양론이 갈리는 가운데 여야 합의 없는 법안 처리가 6·3 지방선거 앞 금강벨트 민심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 귀..

설 밥상 달구는 대전·충남 행정통합…충청 민심 어디로
설 밥상 달구는 대전·충남 행정통합…충청 민심 어디로

560만 충청인의 설 밥상 최대 화두로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민족 최대 명절이자 6·3 지방선거 금강벨트 민심을 가늠할 설 연휴 동안 통합특별법 국회 처리, 주민투표 실시 여부 등이 충청인의 밥상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아울러 집권 2년 차를 맞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평가와 통합시장 여야 후보 면면도 안줏거리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대전충남을 비롯해 광주전남·대구경북 등 전국적으로 통합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역시 통합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뜨겁다...

[설특집] "얘들아, 대전이 노잼이라고?" N년차 삼촌과 함께 대전 투어
[설특집] "얘들아, 대전이 노잼이라고?" N년차 삼촌과 함께 대전 투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소홀했던 시간들. 이번 설날, 나는 서울에 사는 초등학생 조카 셋을 위해 대전 투어 가이드를 자처했다. 대전에 산다고 하면 조카들은 으레 "성심당 말고 또 뭐 있어?"라며 묻곤 했다. 하지만 삼촌이 태어나고 자란 대전은 결코 '노잼'이 아니다. 아이들의 편견을 깨고 삼촌의 존재감도 확실히 각인시킬 2박 3일간의 '꿀잼 대전' 투어를 계획해 본다. <편집자 주> ▲1일 차(2월 16일): 과학의 도시에서 미래를 만나다 첫날은 대전의 정체성인 '과학'으로 조카들의 기를 죽여(?) 놓을 계획이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 누가 누가 잘하나? 누가 누가 잘하나?

  •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 전달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 전달

  • ‘어려운 이웃을 위한 떡국 떡 나눠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떡국 떡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