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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배재대 총장 |
예순이 넘은 필자가 '팬덤(fandom)'에 빠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탐나는 그의 재능이다. 그는 첫 등장 무대에서 '나는 배 아픈 가수다'라면서 실력 있고 잘 되는 사람이 있으면 배 아파한다고 했다. 실력 없는 사람이 잘 될 때 심사가 뒤틀릴 텐데 참 희한하다. 심사위원들을 패배자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당돌한 말에 '30호'의 무대를 지켜본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갈채를 보했다. 무대에 기타하나 들고 오른 청년은 마치 심사위원과 밀고 당기기를 하듯 노래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긴장한 듯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더니 '이번 무대에서 모든 걸 다 보여줬다'는 당돌함도 보였다. 한 번 오르기 힘든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름을 물어본 심사위원들에게 '30호'라는 호명을 알려준 위트도 돋보였다. 본인이 '찐(진짜) 무명조'에 있고 탈락하지 않았으니 이름을 알려줄 이유는 만무하다. 내재된 스타성이 발휘된 1초였다고 생각한다. 괄목할 만한 가수가 등장했다는 영상을 전해 받고 그의 팬이 되기로 했다. 그의 진짜 재능은 흡인력 높은 스타성이다.
그의 또 다른 재능은 재해석이다. '30호'는 이미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싱어게인에선 본인 노래가 있으면서도 귀에 익숙한 노래를 전혀 다르게 불러내고 있다. 무대를 거듭할수록 19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시기는 우리나라 대중문화 부흥기였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가수 서태지가 등장했고 촌철살인을 날리던 '마왕' 신해철도 이 시기에 활발했다. 필자도 같은 시기에 학생들과 가장 많은 소통을 해 대중가요가 익숙하다. 세기말이 다가오던 때에 짙은 감성을 호소하듯 노래한 음악이 귀에 맴돈다. 1989년생이라는 '30호'는 이런 감성을 뛰어넘은 듯 했다. 가수 박진영과 신해철의 노래를 전혀 다른 노래로 불렀다. 흔히 필자 세대에게 기타를 멘 가수는 포크송을 부른다고 착각하기 쉽다. 재즈 감성을 더한 음악은 상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재해석의 귀재가 바로 '30호'다.
예측을 뛰어넘은 재능은 항상 극찬을 받는다. 필자에게 '30호'가 그런 가수가 됐다. 어떤 때는 그를 만나 무명시절 어려움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아실만한 독자는 알겠지만 사실 '30호'는 배재대학교 졸업생이다. 우리 대학을 졸업한 동문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경청하고 있는 이유다. 재학생들이나 교직원들도 '30호' 동문의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1년 그가 대학가요제 본선에 올라 정재형·이효리 씨와 한 무대에 선 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영상으로만 그의 열정을 만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언젠가 '30호'를 대학에 초대해 재학생과 교직원들이 그의 무대에 환호하게 했으면 한다.
그때는 '30호'의 무서운 성장세가 가속페달을 밟아 우러러 볼 스타가 돼 있을 수도 있다. 벌써부터 그의 목소리, 활동을 지켜보는 이가 많아진 덕분이다. 매주 영상으로라도 마주하고 응원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경이로운 행복함을 주는 가수는 필시 싱어게인 심사위원 유희열 씨의 말처럼 대단한 스타성을 겸비한 가수가 될 것이다. 경연이 끝나고 나면 모교를 찾아 후배들 앞에서 웅장한 무대로 휘어잡아주길 기원한다. 필자는 박수칠 준비가 끝났다.
김선재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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