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 갑천과 금강의 조우, 그 순간의 안녕

[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 갑천과 금강의 조우, 그 순간의 안녕

갑천⑤ [기막힌 우연의 순간에서 또 만나기를]

  • 승인 2021-11-02 00:00
  • 신문게재 2021-11-02 10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컷-3대하천
막막했던 그 길에서 용기로 내디딘 첫발이, 어느새 길의 끝에서 안녕을 고할 때가 왔다. 세 달 간 대전천, 유등천 그리고 갑천 세 갈래의 3대 하천에서 각자 바라봤던 여정은 끝내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 다른 곳에서 흘러와 마침내 하나가 되었고, 함께할 때 얼마나 큰 물살이 되는지 두 눈으로 지켜봤다. 물은 반드시 흘러야 한다. 그 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고 돌아와 다시 우리의 보폭에 맞춰 흘러가는 기막힌 우연의 순간을 기다린다.

10월의 마지막 날, 갑천 마지막 코스를 걸었다. 신구교에서 갑천과 금강이 Y존으로 흘러가는 구간을 거쳐 금강으로 발길을 돌려 집까지 오는 코스다. 갑천을 걸어 집에 올 수 있으리라고 첫 시작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집이 금강(대청댐)과 가까운 신탄진이라는 것도 내가 갑천을 선택하게 된 것도 모두 우주가 의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각설하고, 갑천의 마지막 길은 연어처럼 집을 찾아가는 회귀(回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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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교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갑천 걷기 코스. 마지막까지도 감사하게 날씨가 좋았다. 사진 왼편에 보이는 다리가 신구교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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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하늘, 그림같은 갈대. 사진=이해미 기자

*자꾸 마지막이라고 해서 미안해요. 이것도 시작인 것을
결국 이 날이 왔다. 무려 77.3㎞의 대장정의 끝을 향하는 날이다. 네번째 걷기가 신구교에서 끝났기에 다시 신구교로 향했다. 다만 그동안 갑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왼편으로 줄곧 걸어왔다면 이번에는 오른편 산책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하늘은 내 편이었다. 완연한 가을 맑고 쾌청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이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이번 코스 갑천변에는 야구장이 많았는데, 동호인들이 오전부터 게임에 한창이었다. 걷다 보니 경기장 밖으로 이탈한 야구공이 보였다. 어디에 떨어졌는지 몰라 찾아가진 못 했거나 누군가 홈런을 쳤다는 뜻이겠지. 홈런을 친 사람은 좋았겠다 싶으면서도 아주 희박한 확률로 날아온 공에 사람들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변 야구장 외곽에 설치된 가림막이 더 높아야만 할 것 같았다.

갑천은 유난히 고요했다. 사람이 많은 코스는 아니기도 하지만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모두 가까운 갑천이 아닌 외곽으로 가을 나들이를 간 모양이다. 덕분에 조용히 갑천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꾸 마지막을 강조해서 다시는 갑천에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릴까봐 걱정이다. 프로젝트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하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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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찍게 되는 갑천. 비록 77.3km를 완주하지 않았지만 대전 구간은 모두 걸었으니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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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으로 아무리 당겨도 담기지 못하는 Y존. 아쉽고 아쉬운 갑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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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는 사진 찍기가 어렵다. 마지막 코스에서는 볼록거울을 그냥 지나쳐서 그림자로 대신 인사 한다. 사진=이해미 기자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이번 코스는 유난히 짧다. 네 번째 걷기에서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코스였지만 오늘을 위해서 아껴둔 구간이다. 그러나 겨우 30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갑천 물길이 저 멀리 세종시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일부러 갑천과 금강이 합강 되는 구간을 잘 보기 위해 오른편 산책길을 선택했지만, 직진할수록 갑천 물길과는 속절없이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허무하게 안녕인가.



천변으로 더 가까이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금강 로하스로 이어지는 길뿐이었기에 직진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드디어 대전에서 모인 3대 하천이 더 먼 여정에 올랐다. 대전과 충북을 지나 세종에서 충남을 돌아 서해로 간다. 패닉의 히트곡 가운데 '달팽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가사에 보면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에게 달팽이가 속삭인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그 느린 걸음으로 도대체 언제 바다에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이 노래 가사는 절대 불가한 꿈을 꾸는 달팽이가 어디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도 이런 꿈을 꾸고 있는데, 너는 왜 안된다고 단정 짓고 불안해하는 거냐고. 이적은 달팽이를 화자로 삼았지만, 갑천과 금강을 걷고 있는 나에게는 여름날 땅 위로 슬쩍 올라왔던 맹꽁이가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갑천과는 안녕이지만 또 새로운 길에 서게 될 거니 힘내라고 말이다. "맹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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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금강이 나타났다. 천보다는 큰 규모다보니 물살도 유난히 강하게 느껴졌다. 금강이라는 푯말 위로 모형 비행기가 날고 있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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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식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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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집으로 가는 길
걷고 있는 길 왼쪽에는 이제 갑천이 아니라 금강이 흘렀다. 갑천과는 더더욱 멀어졌지만, 금강변으로 들어서면서 재밌는 공간을 많이 만났다. 맹꽁이 서식지와 드론운동장도 만났다. 맹꽁이 서식지는 11번 구역이라는 곳에서 보호되고 있었는데 여름철 산란 후 또다시 깊은 잠에 빠진 것인지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드론운동장에서는 드론이 아닌 모형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자유자재 하늘을 날고 소리도 꽤 커서 실제 비행기라고 오인할 것 같았다.

갑천과 금강이 합강 되는 지점부터 산책길과 자전거 도로는 분리된다. 산책길은 드론운동장 쪽으로 진입하면 되는데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서 마치 동화 속 세상을 걷는 듯 했다. 동화 속 세상은 계속 이어진다. 풀숲에서 빠져나왔더니 이번에는 핑크뮬리 세상이다. 핑크뮬리를 한참보다 대청댐 방향으로 조금 걷자 곧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갑천도 바다라는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흘러야만 하는 생명의 속성 거를 수 없듯이 자신의 근원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무한한 회귀의 힘. 그것은 본디 태어난 것들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고된 하루의 위로, 또 새로운 시작을 위해 편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집. 갑천에게는 그곳이 금강이고 서해였으면 좋겠다. /갑천=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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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로하스길을 걷다보니 핑크뮬리가 나타났다.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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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어도 좋고, 함께 걸어도 좋은길에서.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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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수정 좀 해주세요. 사진=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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