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20. 자유와 고독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20. 자유와 고독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3-05-25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지난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김찬양의 독주회에서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A장조, 드뷔시의 기쁨의 섬, 그리고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마지막 악장에 음악 암호로 등장하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는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이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독일 낭만주의 어구로 쓰였지만, 브람스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좌우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람스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의 독일어 세 단어의 첫 자인 F.A.E의 음계 파.라.미를 멜로디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자주 사용한 요아힘보다 오히려 브람스를 연상하게 되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입니다. 슈만이 사망한 이후에도 브람스는 클라라를 일방적으로 연모하였고, 클라라가 사망할 때까지 그를 보살폈지요. 브람스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사랑을 알고 있었고, 그 사랑을 평생 갈구하였지만, 클라라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을 지켜나갔지요.

사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한 바도 있지요. 그는 "사랑하는 클라라,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중략) 나는 당신을 '나의 클라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썼지요. 이런 시기에 슈만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브람스에게 기회가 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브람스는 오히려 클라라로부터 멀리 떠나고 맙니다.

이러한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브람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주옥같은 명곡을 남기게 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브람스의 친구인 요아힘의 좌우명인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사실상 브람스에게 가장 부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브람스의 생각이 그의 피아노소나타 3번 5악장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입니다.



저는 연주회 이후 '자유와 고독'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문재라는 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시를 썼더군요. 이문재 시인은 이 시에서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시작으로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라고 자유와 고독을 정리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있는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지요. 홀로 삶을 책임져야 하는 고독, 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독이 숙명적인데, 그 고독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역설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자유와 고독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자유와 고독의 만남은 '혼자 걷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걷는 주체는 나이고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습니다.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유지요. 걷는 것은 이토록 자유롭지만,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르지요. 외로운 시간은 나를 옭아매지만, 고독한 시간은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의 자유가 아니라 고독 속의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자유와 고독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매일 15킬로미터 정도,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걷고 있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가균형발전과 행정수도 완성' 시급...대한민국 악순환 끊는 해법
  2.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정책 포럼 성료…“AI는 동반 예술가”
  3. [대전다문화] ‘와글와글 가족 페스티벌’에 작은 손길을 더하다
  4. [대전다문화] 자유의 시작, 필리핀 독립기념일 이야기
  5. 가원학교 진동 원인 에어컨 실외기? 다음날엔 감지 안 됐다
  1. [대전다문화] 올여름, 로하스 야외수영장으로 시원한 물놀이 어떠세요?
  2. [대전다문화] '6월에 결혼하면 행복해진다' ? 일본에서 온 작은 속설 이야기
  3. [대전다문화] '아이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4.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장마철 침수 우려 지역 점검
  5. 충남대 글로컬대학 사업 대토론회… 학과 통폐합·예산계획 등 의견개진

헤드라인 뉴스


"해부수 이전 부적절" 충청권 4개 시도지사 강력 반발

"해부수 이전 부적절" 충청권 4개 시도지사 강력 반발

이재명 정부가 집권 초 해양수산부 부산이전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4개 시·도지사가 행정수도 완성에 역행하는 부적절한 처사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중도일보가 해수부 탈(脫) 세종을 막기 위해 충청권 시도 공조가 시급하다고 보도(6월 12일자 1면)한 뒤 전격 회동한 자리에서 해수부 사수 의지를 다진 것이다. 충청 시도지사들은 또 야당 일각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경남 사천 이전 시도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 입장이 없지만 향후 강력하게 대응키로 했다. 지역 성장동력 양대 축인 세종 행정수도와..

검찰, 추행 혐의 송활섭 대전시의원 징역 1년 구형
검찰, 추행 혐의 송활섭 대전시의원 징역 1년 구형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송활섭 대전시의원에 대해 검찰이 징역의 실형을 구형했다. 대전지법 형사8단독(이미나 부장판사) 심리로 19일 열린 송활섭 시의원의 강제추행 혐의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송 의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신상정보 공개와 고지 및 취업제한 명령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송 의원은 지난해 총선 때 국민의힘 소속이면서 같은 캠프 여직원의 엉덩이를 몇 차례 만지고 손을 잡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송 의원 측은 일부 신체 접촉은 있었을 수 있지만 추행의 의도..

미분양 아파트 정부가 매입…건설 경기 살아날까
미분양 아파트 정부가 매입…건설 경기 살아날까

정부가 침체한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다. 특히 건설 경기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미분양 주택 문제 해결을 정부 차원에서의 환매조건부 매입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이 충청권을 비롯해 전국 지방 도시에서 심화하는 건설 경기 침체 현상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2조 7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미분양 주택 환매, 사회간접자본(SOC) 조기 착공, 중소 건설사 유동성 지원 등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맹물` 짝퉁 화장품 유통시킨 일당 검거 '맹물' 짝퉁 화장품 유통시킨 일당 검거

  • 이른 장마 시작…차수막으로 대비 철저 이른 장마 시작…차수막으로 대비 철저

  • 취약계층에 건강한 여름 선물 취약계층에 건강한 여름 선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