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말들의 잔치' 속 시대풍경 들여다보기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말들의 잔치' 속 시대풍경 들여다보기

김충일 북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5 17:15
  • 신문게재 2023-07-26 1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김충일
김충일 북 칼럼니스트
중견 기업의 팀장인 K! 그래! 일상의 피곤함을 수고로 강제하는 하루 살기의 시작이다. 오늘 발표할 프로젝트 사전 점검을 위해 설친 잠을 뿌리치며, 아내가 차려준 '고등어조림'에 얕은 밥을 끝낸다. 옷에 맞춰 밤색 구두를 신고 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한 뉴스가 귀에 접힌다.

오전 일과를 마친 후 팀원들과 예약해 둔 '낙지 덮밥'을 먹는 데 부서의 뉴스 메이커 송 대리가 '이런 해산물 들어간 음식 먹어도 돼?' '아 그렇지, 온통 나라가 이 이야기로 들썩이지,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지!' 언제쯤 '귀에 들리는' 껍질의 민낯이 '귀에 들리지 않는' 진실의 속살로 다가올까. 오후 거래처 담당과의 미팅은 또 다른 미완의 협의 사항을 남긴 채, 마치 몇십 년간의 우리나라 정치 마당처럼… 끝난다.

회사를 나와 독립서점에 들러 얼마 전 주문해 두었던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를 찾아 들곤 바삐 지하철 입구로 빨려 들어간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곤 책을 읽다 '어둠을 밝히기 위한 촛불의 언어가 순치된 이성적 접근과 감성적 대응'이란 변증법적인 문장을 만난다. 잠시 눈을 감고 '멍 때리는 순간' 안내 방송에 놀라 내리고선 집으로 가는 입구를 찾아 '상품화된 육신의 다리'를 움직여 '자본의 계단'을 오른다.

급기야 집에 도착해 단단하게 각(角)진 아파트 문을 열고 '고마워 K야 오늘 하루!' 신발을 조용하고 야무지게 벗어 가지런히 놓는다. "빨리 씻고 식사해요. 수요 장터에 싱싱한 오징어가 나와서 데쳤어요. 참 아까 생선가게 아저씨가 말하길 판매량이 반으로 줄었대요. 앞으로 어떻게 해요." "아빠! 오늘 학교에 아이들이 그러는데 앞으로 생선 먹으면 암에 걸려 죽는대요."



결국 오늘 하루가 업무 외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로 인한 먹을거리에 관한 '말들의 풍경'이었구나. K씨는 잠들기 전 잠시 인터넷에서 베크벨(Bq), 삼중수소 등 정보 몇 조각 검색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새삼스럽게 베개가 고기잡이배처럼 보인다. 혹, 꿈속에서 말(言)들의 동물원에 갇히지 않을까. 픽션의 '고등어' 바다를 헤엄치지 않을까. 대천 해수욕장의 머드(mud)축제가 워드(word)축제로 바뀌지 않을까.

현실은 삶의 회로가 터질 정도로 복잡한 '완전 소음', '들끓는 잡음', 무엇을 선택적으로 돌보고 표현하고 연결할지 어떻게, 왜 할지 등에 대한 무명(無明)한 말의 폭력으로 꽉 차 있다. 오늘도 일상의 논픽션을 살아내고 있는 K팀장은 허황된 말(言)들이 말(馬)처럼 뛰고, 소통되지 않는 말들로 넘쳐나고, 행복의 지평이 아득해짐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간에 엉거주춤 두려움에 서성거리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국가적 문제는 일상에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흩뿌리며 숱한 거짓과 가짜 뉴스들이 들 끊는 계기가 되었다. 자기 뜻과 맘 맞는 사람들과 링크한 듣고 싶은 말만 듣다 보니 '반향실(Echo chamber)'에 갇히게 되고, 그 메아리를 즐기면서 진위에 대한 판단을 덮어버린다, 하여 '대안적 사실'만이 판을 치고 맹목적 적대(敵對)가 가중되다보니, 그것을 이용해 자기 잇속만을 취하는 세력으로 갈라진 시대 속에 K팀장은 난간에 서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K는 벌써 읽어내고 있다. "옳음을 구하는 자가 도리(道理)는 추구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구하려 하고, 그름을 제거한다는 자가 잘못 된 것은 배척하지 않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것을 제거하려는 자"임을… 그는 기우뚱거리는 일상(논픽션)의 한 난간에 웅크리고 서서 기다리며 균형 맞춰진 제 3의 길을 꿈(픽션)꾸고 있다.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침묵이 고갈되는 날은 분명 온다. 그 날 K팀장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침묵과 침묵할 수 있는 소통"이란 '말들의 잔치'에 배심원으로 참석한 '일상의 옹호자'가 되어 매서운 시대의 심판 봉을 두드릴 것이다. 그 날은 온다!

/김충일 북 칼럼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