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11-서산 태안 사람들의 소울푸드(soul food) ‘게국지’

  • 문화
  • 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 11-서산 태안 사람들의 소울푸드(soul food) ‘게국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3-10-30 09:28
  • 수정 2023-10-30 14:29
  • 신문게재 2023-10-31 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1030_084430177_03
진국집의 게국지 백반
서산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음식은 겨울 내내 먹고 남은 '게장'의 '간장'과 봄철 '김장김치'가 떨어질 때쯤 김치 대용으로 먹던 '봄동'이나 '얼갈이배추'가 쉬게 되면 같이 끓여 낸 김치 진국이 '게국지'다.

'게국지'는 쉽게 말해 게장 국물(게국), 또는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국물(갯국)을 넣어 만든 김치라는 뜻이다. 이 '게국지'를 서산, 태안지방에선 '께꾹지', '꼣꾹지' 등으로 발음한다.



이 지역들의 소울푸드(soul food) '게국지'가 모 공영방송 예능프로그램으로 인해 '꽃게탕'으로 둔갑하여 지금은 '꽃게'와 '김치'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파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꽃게탕이 아닌 서산. 태안의 '게국지'를 맛보기 위해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진국집'을 찾았다. 초행길 서산 사람에게 묻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작은 골목에 나지막한 슬레이트집 상호가 글씨가 퇴색한 허름한 간판, 맛이 아니면 찾아올 수 없는 그런 집에 월요일 날 오후 1시가 넘었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 20여 분을 밖에서 기다렸다.



진국집 주인 할머니 조이순(79)씨는 '게국지'를 식구들 반찬으로 만들어 먹다 하나둘 맛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게국지'를 팔게 된 지가 30여 년이 넘었다고 한다. 사실 조이순 할머니는 '게국지 백반'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시청 앞 광장로타리에 칼국수 집으로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이 집 '게국지 백반'이 '칼국수'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금까지 '게국지 백반' 한 가지만 팔고 있다.

KakaoTalk_20231030_084430177_04
진국집
'게국지'는 막 담은 '게국지'는 말랑말랑하고 푹 익은 '게국지'는 뻣뻣한데, 식성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다. 예전 추억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막 담은 '게국지'를 선호한다. '게국지'는 '김치찌개'가 아니기에 국물이 너무 자작자작해도 안 되고 오래 끓여도 곤란하다. 담가놓은 '게국지'째로 불에 올린 뒤 너무 짜지 않게 빠르게 지져야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발효시키지 않아도 나름의 맛이 있고, 또 푹 익혀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게국지'는 겨울철에 먹어야 제맛이다. 여기에 갓 구운 김이랑 어리굴젓 같은 제철 반찬 서너 가지만 얹어도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게국지 백반'이 8000원 착한 가격이다. 1인분 주문에도 웃으면서 "앉으세요!"한다. 그 감사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게국지 백반' 12가지 반찬이 나왔지만 서산의 또 다른 맛 '어리굴젓(5000원)'을 더 시켰다.

쟁반에 담아 온 밥상을 받고 보니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객지 생활을 하다 언제 어느 때 집에 불쑥 찾아가도 어머님은 짧은 시간에 밥 한 상을 푸짐하게 차려 오신다. 더 중요한 건 객지 생활하는 아들 밥 굶을까 봐 빈 가마솥에 밥 한 그릇을 항상 넣어 두었다가 다음 밥을 할 때 밥이 다 되면 그 밥을 섞고 제일 먼저 아버님 밥 푸고 그다음에 집 나간 자식 밥 푸고 다음에 나머지 식구들 밥을 푸셨다. 그래서 평생 먹는 '밥상'이지만 '밥상은 어머니 마음'이다.

KakaoTalk_20231030_084430177
진국집의 서산 어리굴젓
특히 이 집의 '개국지 백반'에 나오는 호박잎쌈은 된장으로 만든 쌈장과 함께 입맛을 사로잡았다. 쌈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사장님! 이게 뭐예요?" "된장으로 만든 쌈장인데요." 아차! 너무 뻔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머쓱했다.

'게국지' 국물 한 숟가락을 떠 맛을 봤다. 심심한 것이 곰삭은 맛이 났다. 사실 게국지는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60~70년대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칠게로 게장을 담가 겨울 내내 먹은 후 남은 게장의 다리 등과 국물을 버리기 아까워 김장김치가 떨어질 때쯤인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봄동 겉절이 쉰 것이나 먹고 남은 얼갈이배추, 열무김치 남은 것에 게장 간장 남은 것을 넣어 간을 맞추어 끓여 먹던 김치찌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담가놓았던 게장에서 게를 꺼내 절구에 대충 찧으면 노란 속살이 빠져나오는데 아마도 이게 맛을 좌우하는 모양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김장을 할 때 맛이 없는 겉잎사귀 등을 액젓이나 젓갈이 아닌 게장의 간장을 넣고 김치 버무리듯이 살살 버무린 후 삭혀 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가정에서는 김치를 만들면서 질기고 뻣뻣해서 잘 먹지 않는 배추의 가장 겉잎부분과 절구로 찧어 넣은 고추와 호박에 젓국을 푸짐하게 넣고 김장과 함께 담갔다 푹 끓여 내기도 했다.

같은 지역에서도 '게국지' 담을 때, '능쟁이'를 넣는다거나, '박하지'나 '사시랭이'로 담기도 한다. 사실 집집마다 김치 담그는 것이 조금씩 다르고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도 조금씩 다른 것처럼 '게국지' 만드는 방법은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렇듯 서산 사람들은 어려웠던 시절 긴 겨울을 지나 초여름까지 마땅히 해먹을 반찬이 없을 때, '게국지'는 이 지역의 밥상을 책임졌던 서민음식이지만, 특별히 '게국지'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미리 숙성작업을 하며 김치를 담고, 게장을 담가 먹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예전의 '게국지'에는 지금처럼 온전한 '게'가 들어 있지도 않았고 먹고 남은 게장 안의 떨어진 게의 다리들 몇 개만 들어 있던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게국지'는 접근성과 중독성이 홍어 못지않다. '진국집'은 '게국지'도 유명하지만 백반과 함께 나오는 '호박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집에 와서 '호박지' 안 먹으면 서운하다"며 권하는 통에 몇 개 집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 독특한 맛에 뚝배기 하나를 거의 다 비우다시피 했다. 원래 '호박지'는 황해도지방에서 많이 해 먹는 음식인데 그쪽과 환경이 비슷한 서산 태안에서도 각종 해물을 넣고 호박으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게국지'를 담을 때, 주로 이 지역에서 불리는 '능쟁이'라고 하는 '칠게'로 담지만 똘쟁이, '능쟁이', '황발이', '박하지', '사시랭이'로도 담는다. 바위틈에 사는 작고 납작한 게 '똘쟁이'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사는 까맣고 갸름한 건 '능쟁이', 능쟁이 보다 조금 큰데 발이 뻘건 '황발이', 그것보다 좀 더 큰 건 '박하지', 꽃게보다 작은 건 '사시랭이'라고 한다.

KakaoTalk_20231030_084430177_08
서산동부재래시장 수산물코너
서산 동부재래시장 수산물코너에 '똘쟁이', '능쟁이', '황발이'는 보이지 않고, '박하지'와 '사시랭이'가 눈에 띈다. 그러나 초겨울 김장철이 되면 '똘쟁이', '능쟁이', '황발이'도 나온다고 한다. 이 중에 이 지역에서 '능쟁이 '황발이'로 불리는 '칠게'는 방언이 많다.

넓은 사다리 꼴을 하고 있는 칠게는 집게발이 하늘색이나 주황색을 띠고 있으며 수놈의 집게발은 크고 암놈은 작다. 십각목 칠게과에 속하는 해산 갑각류로 학명이 Macrophthalmus (Mareotis) japonicus이다. 우리나라 갯벌에서 가장 흔한 게 중 하나이다. 갑각은 길이 19mm, 너비 30mm 정도이며, 사각형에 가깝다. 집게다리는 대칭이고 긴 마디 배면에 털이 빽빽이 난다. 진흙질 바닥에 직경 1cm 내외의 경사진 타원형 굴을 파고 밀집해 사는데, 썰물에는 갯벌 위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밀물에는 구멍 속에 들어가 숨어 있는다.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갯벌 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은 대부분 칠게 구멍이라 할 정도로 개체 수가 많다. 칠게는 썰물에 갯벌 밖으로 나와 이끼 등을 먹으러 돌아다닌다.

우리나라 거의 전 연안에 서식하며, 세계적으로 일본,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등에 분포한다. 이 '칠게'를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봄철 4월 초순부터 5월 중순까지, 가을에는 8월 초순부터 10월 초순까지 우리나라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 새는 '칠게'를 아주 좋아한다.

KakaoTalk_20231030_084430177_06
박하지 모습
특히 도요새과에 속한 '큰뒷부리도요'는 잡은 '칠게'를 물에 잘 씻어서 먹는, 격식 있는 '신사 도요'로 통한다. 아마도 '칠게'가 맛있다는 것을 인간보다 이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칠게'를 노리는 놈은 '낙지'다. '낙지'는 생각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모양이다. 그 많은 게 중에 유독 '칠게'만 좋아한다. 그래서 낙지잡이를 하는 통발 어선들이 '칠게'를 미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칠게'의 대량 어획을 위해 그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서산, 태안 등 충남 갯마을 사람들은 '게국지' 외에도 '칠게'를 맨손으로 주워서 '칠게볶음', '칠게장'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게'를 전남 갯마을에선 '서렁기'라 불리며 '화랑게(花郞蟹)', '갈게', '찔룩게', '설은게'라고도 부른다. 1814년 정약전(丁若銓:1760∼1816)은 그가 흑산도 유배지에서 쓴 어류학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발을 들었다 접었다 하며 기어 다니는 모습이 춤추는 남자와 같다'는 뜻으로 칠게의 이름을 '화랑게(花郞蟹)'라고 했다. 이 '칠게'를 이용한 음식 중에 전남 신안 섬마을에서 해 먹는 향토음식 중에 '기젓국'이 있는데, 이 '기젓국'은 '칠게젓'을 말한다.

한편 '칠게젓' '칠게장'이라고도 하는데, 입자가 곱다. '칠게'를 빻거나 갈아 젓갈을 담가서다. 따뜻한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밥 한 그릇이 모자랄 정도인데, 고기 구워 먹을 때 '쌈장'처럼 찍어 먹어도 좋다. '칠게젓' 외에도 '칠게장'이 있는데, '칠게장'은 '칠게젓'과 달리 '칠게'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게장'은 '꽃게'나 '참게'로 만드는 '간장게장'과 똑같다. 다만 '칠게'는 작아서 통째로 씹어 먹는다. 껍질이 약한 데다 이미 삭아서 거부감 없이 씹어 먹을 수 있다. '칠게장'이든 '꽃게장'이든 '돌게장'이든, 세상의 '게장'은 다 밥도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칠게장은 껍데기가 얇아 담근 지 열흘 안에 먹어야 한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관광+맛집+숙박' 3박자 갖춘 세종시 전의면에 오면
  2. "충청의 거목 고이 잠드소서" 이해찬 前총리 별세 지역與 '애통'
  3. 대전시립중고교 김병한 교장 '사회공헌 대상' 수상
  4. ‘민주당 킹메이커’ 이해찬 전 총리 베트남서 별세…향년 73세
  5. 한성일 중도일보 이사.도전한국인본부 도전한국인상 언론공헌 대상 수상
  1.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2. ‘광역통합·5극 3특’ 재편, 李 “쉽지 않다… 국민 공감·지지 중요”
  3.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4. 사업비 규모 커진 대학 '라이즈'...지역사회 우려와 건의는?
  5. [건강]노인에게는 암만큼 치명적인 중증질환, '노인성 폐렴'

헤드라인 뉴스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미완의 '세종시=행정수도' 숙제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행정수도와 인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운명의 끈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1988년부터 서울 관악 을에서 국회의원 5선을 역임한 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당원들은 2011년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인 이 전 총리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직전 진행된 제19대 총선에서 47.88%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고, 2015년 3월 임..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경기 한파로 전국의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전은 오히려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직원을 고용해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보다 1인 가게와 무인점포 등 혼자 운영하는 '나 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2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취업자 중 대전 자영업자 수는 15만 5000명으로, 2024년(14만 1000명)보다 1만 4000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14만 2000명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지역 자영업자 수는..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가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따른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권한 이양을 요구하며, 미흡할 경우 주민투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6일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시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항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주민투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으로 비치면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