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효와 제사, 그리고 우상숭배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효와 제사, 그리고 우상숭배

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

  • 승인 2024-04-21 09:55
  • 신문게재 2024-04-22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김덕균 단장
김덕균 단장
종교인들에게 제사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같은 유교라도 집안마다 지방마다 절차와 방법이 다르다. 한국효문화진흥원 전시실에 한동안 제사상을 전시했다. 나름 제사를 안다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제사음식의 위치를 자기 식대로 바꿔 놓았다. 처음 차림상도 뭔가를 기준해서 배설했을 터이지만 이와 다른 집안에서는 용납 못할 일이었다. 지역마다 달랐던 제사가 국가 차원의 문제로 비화된 일도 있다. 조선 현종 때의 예송논쟁이 대표적이다.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된 예송논쟁은 당대 최고의 논란거리가 됐다.

제사로 인한 종교간의 갈등도 제법 심각했다. 조선 후기 유교와 천주교의 갈등이다. 모친상을 당한 천주교 신자 윤지충이 천주교 방식대로 신주단지 없이 장례를 치렀다. 산 사람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던 신주를 없앤 행위는 상상도 못할 불효였다.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조선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효를 무시한 천주교와 천주교 신자는 금수와도 같은 존재가 됐다. 조선 조정은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고,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다. 이후로 천주교 신자 상당수가 피해당했다. 제사 때문에 피해 당한 천주교가 오늘날 제사를 용인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이러니다. 부모에 대한 제사가 단순 공경의 예일 뿐 우상숭배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제사 문제로 인한 종교 갈등은 구한말 또 일어났다. 이번엔 기독교와의 갈등이다. '애매 무리한 기독교의 희생자, 남편이 예수교를 믿고 상식(上食)을 폐한 결과 마누라가 대신 죽어'란 긴 제목의 기사가 동아일보(1920년 9월 1일자)에 실렸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경상북도 영주에 사는 어떤 가장이 예수를 믿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영전에 아침저녁 상식(제사)을 중단했다. 남편의 불효는 곧 자신의 잘못이라며 부인이 대신 속죄한다며 물에 몸을 던진 사건이다. 사건을 접한 당시 기독교인이자 민족지도자 월남 이상재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떤 종교든 부모를 저버리라는 가르침은 없다. 패륜은 가장 큰 죄악이다. 부모도 모르는 패륜자식이 기독교를 믿은들 똑바로 믿을 수 있겠나." 영주의 가장을 나무라는 소리다. "신주를 모시고 거기에 길흉화복과 생명까지 맡기며 절하며 비는 것이 문제이지,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며 행하는 예식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제사는 효성의 산물이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적합하다고 했다. 그런데 기독교는 제사를 우상숭배라며 용인하고 있지 않다. 일부 교단에서 넓은 의미의 공경으로 이해하며 눈감아 주는 경우는 있어도 본격적인 승인은 아니다.

죽은 자에 대한 의식이 우상숭배라는 이유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기왕에 제사 지낼 거면 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如在) 생각하고 진중하게 지내라 했다. 상당수가 절대적 존재로서 조상신을 생각하기보다는 형식적 절차로 생각하고 건성건성 지내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다. 제사의 핵심은 진실한 마음에 있다. 부모님이 계신 것처럼 생각하며 회고하고 추모하는 것이 제사라면 제사는 자연스런 효심의 한 표현이다. 이상재의 말처럼 길흉화복에 생명까지 비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면 제사는 부모공경의 한 표현 방식이다. 살아계신 부모에게 하는 절은 공경의 표현이고, 죽은 부모에게 하는 절은 우상숭배라면, 논리적인 문제가 따른다. 만일 그렇다면 현충일과 각종 행사 때마다 하는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우상숭배인가? 기본예절인가? 큰 절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면 목례는 절이 아닌가?



큰 절도 절이고 목례도 절이라면, 또 그것을 이해하고 용납한다면 종교간 제사로 인한 갈등은 부질없다. 돌아가신 분들 기리는 장소에서 큰절은 효이고, 목례는 불효라는 말도, 또 큰절은 우상숭배고 목례는 예라는 말도 설득력도 합리성도 없다.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큰절과 목례, 모두가 소중한 예이고 효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효와 예가 이 나라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 읍면동 행복키움지원단 활동보고회 개최
  2. 천안법원, 편도 2차로 보행자 충격해 사망케 한 20대 남성 금고형
  3. ㈜거산케미칼, 천안지역 이웃돕기 성금 1000만원 후원
  4. 천안시의회 도심하천특별위원회, 활동경과보고서 최종 채택하며 활동 마무리
  5. ㈜지비스타일,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내의 2000벌 기탁
  1. SGI서울보증 천안지점, 천안시에 사회복지시설 지원금 300만원 전달
  2. 천안의료원, 보건복지부 운영평가서 전반적 개선
  3. 한기대 온평원, '스텝 서비스 모니터링단' 해단식
  4. 재주식품,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후원 물품 전달
  5. 백석대 서건우 교수·정다솔 학생, 충남 장애인 체육 표창 동시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행정통합이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 발언으로 추진 동력을 확보한 가운데 공론화 등 과제 해결이 우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는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면서 충청권의 광역 협력 구조를 '5극 3특 체제' 구상과 연계하며 행정통합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전·충남의 행정통합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현재 국회에 제출돼 소관위원회에 회부된..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격전지인 충청을 잡으려는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전·충청지역의 미래 어젠다 발굴과 대시민 여론전 등 내년 지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권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역대 선거마다 승자를 결정지었던 '금강벨트'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여야 정치권에게 내년 6월 3일 치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1년 만에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선거로서,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안정..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윤석열 정부가 무자비하게 삭감했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026년 드디어 정상화된다. 예산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연구 현장은 회복된 예산이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철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이달 2일 본회의 의결을 통해 2026년도 예산안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 총 R&D 예산은 2025년 29조 6000억 원보다 19.9%, 5조 9000억 원 늘어난 35조 5000억 원이다. 정부 총지출 대비 4.9%가량을 차지하는 액수다.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 파동으로 2024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