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이인로의 시 <속행로난>과 김홍도 그림 <동강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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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이인로의 시 <속행로난>과 김홍도 그림 <동강조어>

  • 승인 2025-01-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광무제(BC4 ~ AD57, 재위 25 ~ 57)는 중국 후한 창업으로 한을 재건한 황제다. 동한이라고도 부르는데, 23년 왕망을 격파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위업이 가능했던 것은 덕장인 광무제 자신에게도 있겠지만, 휘하에 훌륭한 신하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광무제에게 호양 공주(湖陽公主)라는 미망인 누이가 있었는데, 은근히 송홍(宋弘)이라는 신하를 흠모했다. 공주의 눈에 위풍당당한 용모와 덕에 넘치는 기품이 돋보였던 모양이다. 광무제가 알아채고 둘의 연을 맺어주려 한다. 어느 날 송홍이 입궐하자, 아내를 바꿔보는 것은 어떠냐며 의사를 떠본다. 김희영 저 <이야기 중국사>에 의하면 송홍이 이렇게 말한다.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며, 구차하고 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는 절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처남매부 되자 청하는데 근엄하고 완곡하게 거부한 것이다.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한다.



어진 인재가 수없이 등장하지만, 한 사람만 더 살펴보자. 처사(處士) 엄광(嚴光, BC.39-AD.41) 이야기다. 엄광은 광무제와 어려서 동문수학한 죽마고우이다. 광무제의 창업에 적잖이 기여했지만, 황제에 오르자 홀연히 사라졌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아,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 광무제가 "이 사람 엄광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텐가. 서로 돕는 게 의리가 아니겠는가?" 엄광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광무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는 옛날 요임금 때 소부(巢父)가 귀를 씻었다는 고사를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선비에게는 굽힐 줄 모르는 뜻이 있는 것일세. 나를 귀찮게 하지 말아 주게." 광무제가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했으나, 집으로 돌아가 농사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으며, 이후 부춘산에 들어가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다. 한나라 때 청절(淸節)의 선비가 많이 나온 것은 엄광의 이 같은 뜻을 본받은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공의 유무, 크기에 따라서 알맞게 포상하는 것이 논공행상이다. 물론, 논공행상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것이 인재등용이다. 진지한 검증을 통해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 능력을 백분 발휘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야 한다. 전문성, 능력도 없으면서 엉터리 공이나 허울로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요즘 세태와 비교하면 얼마나 신선한가? 두고두고 귀감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림
김홍도, <동강조어>, 지본담채, 111.9 × 52.6cm, 보물 제1971호, 간송미술관
이인로(李仁老, 1152 ~ 1220, 고려시대 시인)는 임춘(林椿) · 오세재(吳世才) 등과 어울려 시와 술을 즐겼으며, 세칭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활동하였다. 스스로도 문학역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지만, 크게 쓰이지 못해 종종 한탄했다. <속행로난(續行路難, 세상살이 어려움을 잇다)>이란 시가 있다. 2수는 지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한탄이 담겨있지만, 1수와 3수에서는 깨끗하고 고고한 삶을 노래한다. 그 본보기로 엄광을 호출한다. 자릉은 엄광의 자이다. 1수만 옮겨 본다. "산에 올라 성난 호랑이 수염 건들지 말고 / 바다에 가서 잠자는 용의 구슬 탐내지 마라 / 사람이 한가할 땐 지척이 천리처럼 느껴지고 / 태산준령도 토담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나라끼리 사소한 일로 서로 싸워 소란한데 / 갈림길 너무 많아 양주(楊朱)도 눈물지었지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엄자릉이 광무제 오히려 업신여기며 / 칠리탄 기슭에서 낚시질만 한 것을"

다양한 형태의 고사인물도도 많이 그려진다.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조선 도화서 화원) 의 <삼공환불도(三公不換圖)>도 이 고사가 소재이다. 대자연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것을 삼공벼슬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은 같은 소재의 김홍도 작 <동강조어(東江釣魚)>이다.

상부와 하부가 나뉘어져 있다. 사이에 큰 여백이 있어 이색적이다. 상하의 나무가 같은 크기인데다 심원법으로 그려져 심산유곡이 바로 눈앞에 있고, 사람이 아주 먼 아래에 있는 것 같다. 낚싯대 떠난 눈길 역시 고기 낚는 것과 거리가 멀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절로 느껴진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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