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지막 갓 쓴 선비 강헌 선생의 소망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기고] 마지막 갓 쓴 선비 강헌 선생의 소망

이석우 전 계룡용남고 교장

  • 승인 2025-02-04 13:33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이석우
이석우 전 계룡용남고 교장
우리는 매년 설과 추석 명절을 보낸다.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한다. 여기에서 만나는 대상은 주로 같은 족보(族譜)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다.

족보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연관계를 부계 중심으로 도표 형식의 책으로 제작한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족보도 출현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 저하에 따라 대가 끊어지기도 하고 족보도 단출해질 것이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족보를 통해 사람들은 가문(家門)의 단합을 끈끈하게 했고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키웠다.



족보를 연구하는 학문을 보학(譜學)이라 한다. 보학은 일반적인 족보의 역사를 고찰하기도 하고 각 가문의 족보에 나타난 혈통과 구성원을 살피고 시조(始祖)까지 소급하여 인물의 역사를 탐색하는 것이다.

강헌(剛軒) 이종순(李鍾醇) 선생(1931∼2000)은 보학의 대가였다. 초려(草廬) 이유태 선생의 11대손으로 선비정신을 지키기에 어긋남이 없었다. 성암(醒菴) 이철영 선생의 종손자로 항일운동의 뜻을 받들어 평생 보발을 하고 두루마기에 갓을 쓴 모습으로 출입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재임하기 전까지 10여 년을 족보 관련에 매진했다.



강헌은 족보에 대해 매우 밝았다. 전국 성씨의 항렬 글자와 그 소목(昭穆)을 꿰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그 이름의 한자(漢字) 표기나 부친과 그 형제들 이름을 예상해 말했다. 강헌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돌림자를 알고 나면 나머지 한 글자는 대개 이름에 쓰이는 한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름에 특별한 벽자(僻字)를 쓰는 경우는 예외였다. 강헌은 사람들이 희언으로 '걸어 다니는 족보'라 일컬을 만큼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강헌집'에는 중앙화수회 설대동보역(中央花樹會設大同譜役), 증정 족보문화사 신창(題呈族譜文化社新創) 등의 한시(漢詩) 작품과 '가락김씨 삼현파 가승보 서(駕洛金氏三賢派家乘譜序)', '경주이씨 청계공 파보 서(慶州李氏淸溪公派譜序)', '이천서씨 비인공 파보 서(利川徐氏庇仁公派譜序)', '합천이씨 기사보 서(陜川李氏己巳譜序)', '봉산지씨 족보 서(鳳山智氏族譜序)', '경주이씨 월성군 파보 서(慶州李氏月城君派譜序)' '경주이씨 모산공파 부사공파 세보 서(慶州李氏 茅山公派 府使公派 世譜 序)'등 여러 가문 족보의 서문을 한문으로 쓴 글이 수두룩하게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에 담겨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족보에 기록되는 내용은 한 인물의 생년월일시, 사망일, 묘소 위치와 좌향, 결혼 관련 사항, 벼슬한 내용, 행적 등이다. 족보의 가치는 족보를 지키고 편수함으로써 사람이 사람다워지고 나라가 나라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족보가 존재하고 활용됨으로써 인륜이 밝아지고 기강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족보의 의의에 대해 선대, 방계, 자손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상술하고 있다. 먼저, 선대의 업적을 알고 그러한 행동을 본받고자 노력하며 효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방계 일가친척끼리 돈독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자손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자애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집안 족보의 제작이 각각의 집안에 여기저기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조상에 대해 말할 수 있고[述其祖], 근본을 소급할 수 있으며[溯其本], 종중을 돈독히 하고[敦其宗], 그 족친을 거두어 돌보는[收其族] 밑바탕이라 했다. 천백 세대에 족보가 면면히 전해짐에 세상이 선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족보의 갈래로는 세 가지 부류로 언급하고 있다. 먼저 대동보(大同譜)는 시조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져 수십 권의 방대한 자료이다. 파보(派譜)는 중시조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가승(家乘)은 일정 부분의 친척들로 이루어져 만든 작은 족보로 가계도를 확장하여 족보 형식으로 갈아탄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승이 작은 힘을 들이고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족보의 편수(編修)는 30년마다 해야 한다고 했다. 30년은 한 세대를 말한다. 이 기간에는 태어난 사람, 결혼한 사람, 새로운 관직·직장에 나가는 사람, 죽은 사람 등 족보에 새롭게 수정하거나 추가 기록할 내용이 많이 나타난다. 이 내용을 첨가해 족보를 편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명인륜(明人倫)하고 입기강(立紀綱)하는 것이라 했다.

족보를 만드는 절차는 제일 먼저 의논을 모아 족친(族親)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일이다. 이후 자체 규약을 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며, 그다음은 단자를 거두는 즉 수단(收單)하는 일이다. 최종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족보를 재구성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도 이름을 명기하고 아들딸 기록하는 순서에 아들을 앞에 기록할지, 출생 순서에 따를지를 규약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국역도 검토하고 기존에 간지(干支)만을 사용한 연도 표기방식도 시대의 흐름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대가족이 함께 기거하는 시대가 아니라 핵가족 시대다. 농촌 공동체 사회에서 도시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친척들도 명절에야 만날 정도다. 이에 족보 구성원 사이에 유대감을 다져 나가는 길이 사람다운 삶의 길임을 제언(提言)한다.

이석우 전 계룡용남고 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온기 페스티벌" 양산시, 동부 이어 서부 양산서 13일 축제 개최
  2.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3. 대전 학교 냉난방 가동 체계 제각각 "중앙통제·가동 시간 제한으로 학습권·근무환경 영향"
  4. ‘조진웅 소년범’ 디스패치 기자 고발당해..."소년법, 낙인 없애자는 사회적 합의"
  5. [중도초대석]김연숙 심평원 대전충청본부장 “진료비 심사, 의료질 평가...지속가능한 의료 보장”
  1.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2.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노후 전선·붕괴 직전 천장… 충남경제진흥원 지원 덕에 위기 넘겨
  3.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4.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5.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