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동물농장으로 간 이상도시

  • 정치/행정
  • 대전

[세상보기]동물농장으로 간 이상도시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건축가

  • 승인 2025-05-08 16:19
  • 신문게재 2025-05-09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병윤 전 대전대 디자인아트대학장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건축가
희망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모두가 높은 성을 짓자고 했다. 평등하고 억압 없는 나의 성을 위해 모두 정성 들여 탑을 높이 세웠다. 각자의 손으로, 꿈꾸던 자신의 미래를 쌓아 올렸다. 하지만 성이 완성될 즈음, 그곳에는 돌연 주인이 나타났고 이후 사람들이 꿈꾼 성은, 점차 불안이 감돌기 시작했으며, 결국엔 그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성은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 간다.

역사 속 현실의 시간으로 가보자. 어느 날, 그 감옥의 벽 너머로 한 줄기 희망처럼 젊은 기자가 다가왔다. 바로 영국 웨일스 출신의 가레스 존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국가, 모스크바 공국으로 시작한 소련의 진실을 직접 보고자 했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의 모티브로도 손색이 없을 다양한 모양의 첨탑을 가진 그가 상상한 도시 모스크바는 비잔틴제국의 영화를 재현한 화려함의 이상도시였다. 그러나 눈으로 본 모스크바는 공포의 디스토피아가 되어 있는 절망적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또 보았다. 벽 안에 갇힌 사람들, 굶주림과 침묵, 그리고 소리 없는 아우성과 인간의 죽음을. 후일 역사는 이를 홀로도모르(아사)로 또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표현하는 대 흉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이상은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고 오히려 천만 명이 넘게 죽임을 당한 현장 이었다. 가레스 존스는 진실을 봤지만 그것을 전할 언어와 무대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기근이 심했다지만 스탈린의 '사회주의 근대화'란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수난을 당했고, 존스 역시 취재하는 길에서 죽다 살아 겨우 이를 세상에 알린다. 이후 존스는 취재 중 중국 만주에서 괴한에게 살해 당한다.

갈망한 모두 그 성이 아름답다고 믿고 싶어 했다. 꿈꿨던 유토피아의 이상을, 감히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진실을 말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이고 듣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라고 말한 사람, 유토피아를 그리도 꿈꾸었던 영국의 조지 오웰은 이 경고를 들었다. 그리고 깊은 물음을 품었다. '왜, 이상은 항상 배신당하는가?' 라고 '동물농장'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처음에는 공평한 사회를 위해 들고 일어났던 동물들이, 어느새 스스로를 억압하는 권력의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평등은 구호가 되고, 나눔은 통제의 수단이 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유명한 이 구호는 그럴싸했지만 이내 그 평등의 희망은 압재로 바뀌었고, 이상은 슬픈 웃음거리가 된다.

'1984'로 '초국가 재편'을 예시한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도 이상도시의 염원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가레스 존스의 현실 폭로로 같은 배를 탄다. 그는 마치 화가 윌리엄 터너가 '난파선'을 그리기 위해 실제 배에 묶여 폭풍을 체험하듯 스페인 전쟁의 내전에도 참전한다. 누구와 죽을 둥 살 둥 싸우는 것인지? 그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는 바로 그가 체험한 공산사회의 전체주의적 이면을 본 충격으로 태어났다. 아직도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이 이 둘은 이념에 갈등하는 이들의 옥신거리는 주제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주제의 다툼보다 훨씬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낸다.



오늘도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누군가는 평등한 세상을 외치고, 새로운 변화를 부르며 반대편에선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평화를 외친다.

오웰의 '동물농장' 은 조용히 경고한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이상은 쉽게 노래가 되고, 권력은 쉽게 족쇄가 된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이상도시도 맹목적으로 믿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기록도 감시의 대상이 된다. 희망은 필요하나,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신을 살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아봐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4. [2025 국감] 대전국세청 가업승계 제도 실효성 높여야
  5. 대전 중구, 국공립어린이집 위·수탁 협약식 개최
  1. 충청권 국립대·부속병원·시도교육청 23일 국정감사
  2. '충남 1호 영업사원' 김태흠 충남지사, 23일부터 일본 출장
  3.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4. 대전관평초 '학교도서관 운영 유공' 국무총리 표창
  5.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헤드라인 뉴스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정치권 일각에서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 논란을 제기한 가운데 23일 현장에서 열린 정부 안전점검에서도 서로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안전 논란을 처음 들고 나온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은 행정당국의 법정 절차 위반을 대전시는 자재의 품질과 교량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 각각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에 따르면 이날 점검은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건설기술연구원, 대전시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회의 이후 장 의원은 대전시가 중고 복공판을 사용하면서 법정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충남도의 명산과 습지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청양 칠갑산을 비롯해 예산 덕산, 공주 계룡산, 논산 대둔산, 금산 천내습지까지 각 지역은 저마다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간직하며 도민과 관광객에게 쉼과 배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가을빛으로 물든 충남의 생태명소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청양 칠갑산= 해발 561m 높이의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 가을 단풍은 백미로 손꼽는다...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