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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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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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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10일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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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10일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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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10일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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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10일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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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10일 진행된 이운법회 사진 |
왜구에 약탈돼 647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왔던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107일 만인 10일 이운법회를 마지막으로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이날 이운법회에는 이완섭 서산시장, 조동식 서산시의회 의장, 부석사 주지 원우스님, 조계종 총무원 진경스님, 수덕사 주지 도신스님,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 부석사 신도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법회가 열린 충남 서산 부석사 주변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뿌연 연무까지 펼쳐지면서 안타깝고 아쉬움 마음을 전하며 기구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운명을 대변했다.
부석사에 따르면 불상은 1330년 2월 고려 서주 부석사에서 32명이 조성했으며, 그 후 48년 동안 부석사에 모셔져 있다가 1378년 9월 왜구가 700여 척의 배를 몰고 와서 불상을 비롯한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다.
1526년 5월 대마도에 간논지가 창건되면서 주불로 봉안되고 1973년에는 나가사키현 문화재로 지정됐다가, 2012년 10월 문화재 절도범들이 국내로 밀반입했다가 처분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적발돼 몰수됐다.
그 때부터 부석사는 불상 소유권을 주장하며 12년 간 소송을 벌였지만, 대법원이 지난 2023년 취득시효를 인정해 간논지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은 부석사가 불상 소유자라고 인정했으나, 국제사법에 따라 취득시효 만료 시점 불상 소재지 법을 적용, 일본 민법을 따라 판결했다.
백일 친견법회는 대법원의 판결 후 단 하루라도 봉안하길 염원하는 부석사의 요청을 관음사가 허용하면서 이뤄졌으며, 부석사는 1월24일 불상을 모셔와 5월 5일까지 불자 및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친견법회를 가졌다.
이날 이운법회를 마치고 부석사를 떠난 불상은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환부돼 후쿠오카를 거쳐 간논지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동안 4만여 명이 불상을 찾고 이 중 3만 명이 불상을 일본으로 보내지 말라는 서명에 참여했다.
원우 주지스님은 "약탈문화재나 본래 있던 장소를 떠난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정립되고, 문화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에 한일 양국이 협력해 세계적인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며 "우리 이야기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석사에 금동관세음보살좌상 기념관을 지어 1330년 2월부터 시작되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기록·전시하고, 또 미래에 우리가 지향해야 될 문제들에 대해서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진경 스님은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떠나보내며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신도들을 보니 숙연해진다"며 "그러나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한일관계에 있어 맺혀 있던 불편한 부분들이 원만하게 풀리고 더 발전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인 주경 스님과 수덕사 주지 도신 스님도 "이제 보살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고, 언젠가 뜻이 이뤄질 시기가 도래한다면 다시 모실 수 있도록 우리의 노력은 계속 될 것"이라며 "한일 간 팽팽했던 긴장관계를 우호관계로 전환할 계기와 문화유산 환수·보전의 초석이 마련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신도들은 눈물을 훔쳤고, 김용주 신도회장은 발원문을 통해 "이곳에 모인 우리는 보살님의 슬픔을 걷어버리고, 환한 미소를 되찾아 드리고자 다짐한다"며 "보살님의 환지본처를 위해 지극한 마음과 굳센 신심으로 원력 세워 발원한다"고 말했다.
다나카 셋코 간논지 전 주지는 "불상을 우선 간논지에 모시고 이후 대마도 박물관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향후 정기 교류·전시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어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힘들다"고 답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일본으로 보내지만, 지금이 끝은 아니라 생각한다"라며 "불상의 복제와 교류 전시, 나아가 언젠가는 제자리에 봉안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봉송법회 후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비공개 감정과 포장을 거쳐 문화재 특수운송차량에 실려 비와 안개에 휩싸인 부석사를 떠났다.
이날 원우 부석사 주지, 주경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총회 의장, 진경 사회부장 등은 이번 반환을 계기로 한·일간 관계 회복을 기원했으며, 해당 불상을 포함한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 또는 정상적으로 넘어간 문화재에 대한 정기적인 교류·전시를 주문했다.
또한 부석사 측은 금동관세음보살좌상 복제품 2점을 제작해 1점은 연구용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1점은 처음 제작됐을 당시처럼 금동을 입혀 봉안하기 위해 3차원 스캔할 수 있도록 일본 측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부석사 측은 불상이 1378년 왜구에게 약탈당한 사실과 11년에 걸친 소유권 분쟁 끝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 등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높이 50.5㎝, 무게 38.6㎏의 금동관세음보살좌상 결연문에는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산=임붕순 기자 ibs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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