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문화정책 전환의 시기, 바로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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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문화정책 전환의 시기, 바로지금

이희성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25-05-14 17:00
  • 신문게재 2025-05-15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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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교수.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문화정책의 큰 틀은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 시절 수립된 중장기 국가 문화비전 '창의한국'에 근거해왔다. 이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1년 이상, 100여 명이 넘는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낸 유례없는 정책 비전이었다. 당시의 시도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고, 지금까지도 문화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 조건과 정책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저성장 시대의 고착, 기후위기, 인구절벽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문화정책은 더 이상 과거의 프레임을 유지할 수 없다. 비전 없는 반복, 과거 정책의 연장선상에 머무는 방식으로는 문화의 공공성과 미래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에서도 문화비전 재정립 시도는 있었으나, '창의한국'처럼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한 폭넓은 협업 구조 속에서 진행되지는 못했다. 정책 입안이 주무 부처 내부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단기 현안 중심의 방법론적 개선안 수준에 머물렀고, 문화정책이 사회정책으로서 가지는 철학적 깊이나 규범적 역할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새로운 문화정책은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전망적 접근을 가져야 하며, 다양한 영역의 현장 전문가와의 개방적 협업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특히 예술지원 체계의 전면 재정비는 문화정책 전환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의 예술지원 체계는 1970년대 도입된 문화예술진흥법-진흥원-진흥기금이라는 삼각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이를 개혁하고자 문예진흥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로 개편하며 민간합의제 중심의 자율적 지원 구조를 시도했지만, 이후 정치적 외압으로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더 큰 문제는 예술지원의 재정 기반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과거 수천억 원에 달했던 문예진흥기금은 2024년 말 기준 약 600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고, 기금의 근간이 됐던 입장료 부과 제도는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었다. 현재는 관광기금, 체육기금, 복권기금 등에서 재원을 끌어와 연명하는 구조지만, 이는 단년도 예산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형태로 고착되었고, 2~3년 내에 기금 고갈이 예상될 정도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예술지원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헌법적 의무이며, 문화기본법 등 상위법에서도 이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자율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는 예술지원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현 문화행정의 기조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장에 집약된다. 그러나 이는 이상이 아니라 무책임의 명분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예술 지원은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변질됐고, 예술가는 공모제도 속에서 지쳐갔다. 문화예산은 늘었지만, 철학과 방향은 여전히 모호하다. 더 큰 문제는 협력 없는 구조다. 문체부는 문화, 예술, 체육, 관광, 콘텐츠 등 너무나 다양한 영역을 혼자 담당하고 있으며, 예술정책은 항상 가장자리에 머문다. 특히 순수예술과 기초예술은 예산 구조상 '취약 영역'으로 밀려 있다. 예산 부족은 철학 부족에서 비롯된다. 이제 부처 간 협력 기반의 새로운 문화정책 구조가 필요하다. 산업부는 디자인과 브랜드아트 등 창의



산업을, 교육부는 예술중점학교 확대를, 복지부는 예술인 고용·복지 정책을, 행안부는 지역 문화재단과 예산을 맡고, 문체부는 전체 철학과 가치를 조율하는 '비전 부처'로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또한 아르코는 민간합의 기구로서 자율성을 회복하고, 재정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은 단순히 콘텐츠와 산업을 지원하는 기능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은 공동체의 감수성과 사회적 상상력을 지탱하는 공공의 언어다. 문화정책이 그 철학적 기반 위에서 설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이희성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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