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일가인(一家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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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일가인(一家人)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5-06-09 10:11
  • 신문게재 2025-06-10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풍경소리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1월, 중국은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대형 철제 구조물을 무단 설치했다. 구조물은 '양식장'이라는 명목이지만, 중국 인원이 상주하며 한국 측의 조사선 접근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실질적인 실효 지배 강화 조치이자,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쌓아 군사화를 추진했던 전례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국내 정치권,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은 균형을 상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위안부, 독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일본 관련 사안에는 당 대표가 단식까지 하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으면서도, 정작 중국의 해양 주권 침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최근 미·중 패권전쟁이 심화하면서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한·중 교역액은 2852억 달러에 이르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경제적 의존을 발판 삼아 중국은 사드(THAAD) 배치 이후 한류 콘텐츠 금지, 단체 관광객 제한 등 노골적인 경제 보복 조치를 해 왔다. 이 같은 일련의 행위는 한국을 동등한 외교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중화 제국주의' 중심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을 '일가인(一家人)', '동문동종(同文同種)'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일가인' 담론은 단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꾸준히 확대돼 온 개념이다. 삼국시대의 조공 체제, 고려와 조선의 유교 수용과 한자 사용, 심지어 조선 왕조가 자칭한 '소중화(小中華)'라는 인식까지, 중국은 이러한 요소를 근거 삼아 한국을 '자연스러운 문화적 연장 지대'로 간주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문화 교류의 상호성과 한국의 독립적 정체성을 배제한 편협한 시각에 불과하다.

한국의 성씨 중 약 10%가 외국, 특히 중국계에서 유래한 것은 사실이다. 공자의 후손이 귀화해 형성된 '공(孔)' 씨, 맹자의 후예가 신라에 정착한 '맹(孟)' 씨, 고려 시기의 귀화 성씨들인 '장(張)', '노(盧)' 씨 등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많은 성씨는 단순히 문화적 동경이나 상징적 이유로 중국 기원을 주장했을 뿐, 실제 혈통적 연결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산둥성 제남시에서 열린 '세계 노(盧) 씨 대회'에 참석한 사례는 중국이 문화적 친밀성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다. 더불어 그의 아들 노재헌 씨가 중국의 대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관련 연구기관의 원장으로 재직한 경력까지 결합하면서, 중국은 이를 '일가인' 담론의 실제 사례로 포장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은 역사 내내 중국의 영향력 속에서도 확고한 독립성을 견지해 왔다. 고구려·고려의 천리장성 건설과 당·거란과의 치열한 전쟁,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자주적 학문, 그리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모두 중국 중심 질서에 대한 거부이자, 문화적·정치적 독립의 표현이다. 이는 동아시아 문명권 내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주성과 주체성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인식 또한 이 흐름을 명확히 반영한다. 퓨리서치센터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5% 이상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사드 보복, 코로나19 책임 회피, 해양 확장 정책 등 중국의 공세적 외교가 불신 여론을 가중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사회적 혜택을 받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부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이제 더 이상 묵과돼서는 안 된다. 한민족은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수용했지만, 언제나 자율성과 정체성을 지켜온 독립된 국가다. 한국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이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원한다면, 수사적 언술보다 먼저 한국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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