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 순화의 길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사회 순화의 길

  • 승인 2025-06-11 10:51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이석우
이석우 전 계룡용남고등학교장
인류 역사의 사회 풍속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밝고 신선한 면도 있지만 어둡고 안타까운 사회악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강도나 절도 외에도 묻지마 폭행이나 언어폭력, 따돌림, 금품갈취, 갑질 등 숱한 사회악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목표라 하면 선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모두가 도덕과 양심, 질서와 법치의 길에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예절이 지켜지고 겸손함이 배어 있는 사회가 바로, 선한 사회이다.

대략 5~60년 전쯤 이야기다. 초려(草廬) 이유태 선생(1607∼1684) 묘소의 행정구역은 과거 연기군이었다. 오늘날은 세종특별자치시로 바뀌어 초려역사공원(草廬歷史公園)으로 지정되어 잘 관리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묘지 주변의 소나무 도벌도 횡행하였다.

초려 선생의 재실인 외딴집을 관리하던 사람은 체념하고 있었다. 묘소는 이웃 동리 사람들에게 소와 염소들의 가축 방목 장소가 되어서 묘역은 물론 묘지의 봉분까지도 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가축들의 분뇨로 온갖 벌레들이 윙윙대며 득실거렸다. 도산재(道山齋) 재실은 잡초로 가득했고, 위토(位土)의 전답에서도 적절한 소출을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점이 문중에서는 큰 근심거리였다. 수차 협의를 거친 후에 강헌(剛軒) 이종순(1931∼2000)을 보내서 해결해 보고자 하였다. 1965년 강헌의 35세 때였다.

이사한 강헌은 어린 자녀들에게 하교 후 가축을 방목하지 못하게 지키도록 시켰고 손수 낮에는 전답에서 땀을 흘렸으며 밤에는 산판에 있는 나무들을 몰래 벌목해 가지 못하도록 지켰다.



당연히 이웃 동네 사람들의 저항은 대단하였다. 지난날 대대로 해 왔던 일인데 왜 못하게 막느냐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와서 행패를 부렸다. 심한 사람들은 낫과 괭이를 가지고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타리를 찍어가며 협박하기도 하였다.

강헌이 고향 공주의 선조 제사에 참석하고자 자리를 비운 날 밤에는 더 시끄러웠다. 외딴집의 사립문 주위는 소란스러웠고 부인과 자녀들은 무서움에 벌벌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부인은 마음의 병을 얻었고 이는 육신의 병으로 옮겨졌으며 급기야는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원인이 되었다.

이 어려운 점을 해결한 것은 강헌의 한문 가르침이었다. 강헌은 이사한 그해 겨울부터 매해 겨울 농한기면 마을의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무보수로 한문을 가르쳤다. 외딴집 재실에서 천자문, 계몽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목이 쉬도록 일대 일로 지도하였다. 몇 해 후에는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지어 합류한 막내아우인 병주(屛 洲) 선생과 더불어 더욱 적극적인 지도에 나섰다. 학생들이 많을 때는 50명 가까이 되었다. 먼 동네에서도 글을 배우고자 몰려들었다. 강헌·병주 선생 형제에게는 고달픈 나날이었지만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일념으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내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변화는 서서히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의 사회 풍속은 순화되어 갔다. 학생들은 효도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한문 지도를 해주는 강헌 형제들에게 존경심을 나타냈다. 점점 해악이 되는 일을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은 공손해졌고 강헌 형제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스승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을의 풍속이 자연스럽게 선해져서 예절과 질서를 지키는 문화가 조성된 것이다. 형제들의 노력이 한 마을의 공동체를 선한 이상사회로 만든 것이다. 이에는 물론 한문에 담긴 내용이 오늘날의 지식 위주 교육이 아니라 선한 인성을 함양하는 내용이었음에 기인한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종시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그 옛날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초려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올해 10년째 1주일에 10강좌 시민을 위한 인문학 특별문화강좌를 운영하고 있어 너무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마 강헌 선생도 오늘날의 초려 선생 묘역을 하늘에서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석우 전 계룡용남고등학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장과 국회의원 만남... 현안 해결 한뜻 모을까
  2. 충청권에 최대 200㎜ 물폭탄에 비 피해신고만 200여 건 (종합)
  3.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교실 복도 곳곳 균열… 현장 본 전문가 의견은
  4. 폭우 피해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배수펌프·모래주머니 시민들 총동원
  5. 대전 대표 이스포츠 3개 팀 창단
  1. [월요논단] 충청권 메가시티를 위한 합리적 교통망에 대한 고찰
  2. 조원휘, "충청권 광역철도망 확충은 국가균형발전과 직결"
  3. 해수부 논란 충청권서 李대통령 與 지지율 동반하락 직격탄
  4.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이전 기념식 가져
  5. 대전 동구, '중앙시장 버스전용주차장' 운영

헤드라인 뉴스


미카 129호 어떻게 되나… 코레일 `철도기념물 지정` 예정

미카 129호 어떻게 되나… 코레일 '철도기념물 지정' 예정

딘 소장 구출 작전에 투입됐다며 전쟁 영웅으로 알려졌던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뒤바뀌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절차가 본격 진행된다. 6·25 전쟁에 투입됐고, 한국 철도 역사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됐던 미카 129호가 결국 등록 말소되면서 대전 지역 곳곳에 놓여있는 여러 상징물에 대한 수정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23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가 지난 12일 국가등록문화유산에서 말소됐다. 당시 북한군에 포위된 제24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을 구..

벽걸이형 에어컨 냉방속도 제품마다 최대 5분 차이
벽걸이형 에어컨 냉방속도 제품마다 최대 5분 차이

벽걸이형 에어컨의 냉방속도가 제품마다 최대 5분가량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에어컨 설정·실제 온도 간 편차나 소음, 가격, 부가 기능도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벽걸이형 5종인 7평형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제품 LG전자(SQ07FS8EES)와 삼성전자(AR80F07D21WT) 각 1종, 6평형 5등급 제품 루컴즈전자(A06T04-W)·캐리어(OARB-0061FAWSD)·하이얼(HSU06QAHIW) 각 1종에 대해 평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냉방속도는 삼성전자 제품이 상대적으로 우수했다..

국힘 충청권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해양수산부 이전 철회하라”
국힘 충청권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해양수산부 이전 철회하라”

국민의힘 소속 충청권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이 23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수부 부산 졸속 이전은 충청도민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라며 “이미 오래전에 국민적 합의가 끝난 행정수도 건설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 “행정수도 건설은 특정 지역의 유불리와 관계없는 일이다. 헌법 제123조에 명시된 가치인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진행돼온 일이며, 대한민국 전체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해수부 이전을 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첫 여름김장 봉사 ‘온정 듬뿍’ 대전 첫 여름김장 봉사 ‘온정 듬뿍’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 국제유가 상승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 국제유가 상승

  • 장맛비에 잠긴 돌다리…‘물이 넘칠 때는 건너지 마세요’ 장맛비에 잠긴 돌다리…‘물이 넘칠 때는 건너지 마세요’

  • 코스피 3000 돌파…3년 6개월 만 코스피 3000 돌파…3년 6개월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