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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
내가 사는 고장 금산은 해발 250m 정도로 지대가 높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비교적 안전한 동네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특히 서해와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비구름을 막아주고 있어 주민들 모두 '우리 지역은 풍수해에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세 차례의 수해를 겪었다.
첫 번째 피해는 거대한 비구름이 복수면과 추부면 일부 지역에 걸쳐 머무르면서 물폭탄이 터진 경우였는데, 복수면에 살던 지인은 '빗줄기 사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장대비라는 표현은 알았지만 이런 표현은 처음 들었고, 이어 집이 통째로 둥둥 떠내려 갔다고 했다.
두 번째 피해는 인재(人災)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폭우에 대비해 용담댐 물을 미리 방류해서 비워 놓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다가 급박한 상황이 되자 갑자기 시간 당 수천 톤의 물을 갑자기 방류해 버리는 바람에 수많은 가옥과 농경지가 침수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리고 바로 작년에 엄청난 물폭탄을 맞으면서 정말 많은 피해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 번째 수해 당시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다음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천을 정비했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너무 힘들고 고생하는 피해자들이 많은 데에도 불구하고 나 사는 고장의 지엽적인 얘기를 꺼낸 이유는 겪으면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생기는 엄청난 시련이 수해(水害)이기 때문이다. '불 난 뒤에 남는 것은 있어도 홍수 뒤 남는 것은 없다'는 얘기도 있듯이 피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다. 당장 살 집과 일 할 농토, 가게 및 작업장을 잃어버리고 빠른 복구가 어렵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수해를 입힌 물은 깨끗한 물이 아니다. 물이 빠진 뒤에 남는 것은 황토 찌꺼기로 가득찬 바닥 뿐이다. 건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단 물이 들어온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오물 냄새도 진동한다. 이런 상황을 피해자들 힘만으로 이겨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스스로 기운 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이런 불행 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적십자사를 비롯한 많은 봉사단체들과 마을 부녀회, 새마을회 등의 여러 조직들이 발 벗고 나서 준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공무원, 경찰관, 그리고 소방관들이 나서 주는 모습도 보았다. 땡볕에서, 습하고 냄새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나도 부여, 논산, 금산 등지의 피해 현장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고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방해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모두들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자원봉사자를 보조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퉁박 주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생기면 참여하려 한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마음이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지역 경제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지만 더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십시일반 하는 마음으로 작은 힘이라도 보태지 않으면 내 마음이 어렵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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