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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수필가 |
이 '내로남불'에는 '관용'이라는 너그러움이 전혀 내포되어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않고 타인을 비판할 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날 때가 많이 있지요. 그러나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일이지만 말입니다.
저도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인간관계 속에 다름을 용납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며 저 또한 상대방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를 하고 있는지 반성도 해봅니다.김광림 시인이 쓴 '쥐'라는 시는 변 훈 작곡가가 곡을 붙여 가곡으로 많은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김광림 시인이 말하는 세상에는 쥐를 통해 한탄하고 있는데 시가 재미있어 여기에 옮겨왔습니다.
『쥐』 김광림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란이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어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간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쥐가 되어 가겠지요.
이 시에서 김광림 시인은 "사방에 갉아대는 소리가 들린다며,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란이 만발해 있다"고 하며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올라서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시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도 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를 긁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의 업보는 분명히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터키에서는 타조를 '베웨쿠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낙타 새'라는 뜻이죠.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타조는 날아야 할 때는 '나는 낙타'라고 하고, 짐을 져야 할 때는 '나는 새'라고 말한다고 한다네요. 자기합리화를 말하는 것 같아요.
요즘 많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는 자기 합리화로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비난하는 이중적 잣대로 불편한 관계를 맺을 때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로남불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인간관계를 불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며 남을 판단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책임을 다한 후에야 타인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위선을 지적하기 이전에 먼저 나의 언행은 일치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내로남불 방지책이 아닐까요?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번 홍수로 어수선 했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피해지역으로 달려가 비지땀 흘리며 피해 농촌을 돕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처럼 피해 농촌을 서로 돕는 일에는 내로남불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단합된 모습을 보인 것처럼 이번 기회에 우리도 내로남불로 서로 헐뜯는 일을 다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명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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