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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상청장 |
그러나 우리가 보는 단풍은 그림처럼 멈춰 있는 순간이 아닌 '과정'이다. 나무는 가을이 되면 광합성을 담당하던 엽록소를 서서히 분해한다. 그 아래에 가려져 있던 노란 카로티노이드가 드러나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지면 붉은 안토시아닌이 생성된다. 이는 잎을 붉게 만들며, 단순히 색을 내는 역할을 넘어 자외선 차단, 활성산소 제거, 해충 방지 등 나무의 생존에 기여한다.
일반적으로 단풍은 북쪽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점차 남쪽으로 내려간다.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계선이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 때문으로, 회전축이 기울어져 태양으로부터 받는 빛의 차이가 발생하고 온도 차이까지 만들어 낸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여름에는 태양이 높고, 겨울에는 태양이 낮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단풍이 물드는 시기는 기온, 일조, 강수량 등 여러 요인의 정교한 조합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일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는 시점은 단풍의 시작을 당기는 중요한 신호다. 하지만 최근 이상기후로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가 불규칙해졌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경향 속에서도, 환절기의 큰 일교차 때문에 예상보다 빨라지는 사례도 보인다. 이러한 변동성은 예측을 어렵게 만들기에, 체계적인 관측이 필요하다.
이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기상청은 매년 전국 21개 산의 단풍 시작일과 절정일을 관측해 '유명산 단풍현황'을 제공하고 있다. 첫 단풍은 산 정상으로부터 약 20%가 물들었을 때, 절정은 약 80%가 물든 상태를 뜻한다. 평년(1991~2020) 기준 단풍 절정일은 오대산이 10월 15일로 가장 빠르다. 설악산은 10월 17일, 지리산은 10월 23일, 북한산과 한라산은 10월 28일이며, 무등산과 내장산은 11월 4일, 두륜산은 11월 10일로 가장 늦다.
단풍현황을 참고하면 단풍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10월 초에 오대산을 찾는다면 첫 단풍 직후이므로 정상 부근에서 짙은 단풍을, 하산길에서 초록과 노랑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반면 11월 초에 내장산을 방문하면 어디에서나 붉게 물든 장관을 볼 수 있다. 다만 변동성이 있으므로, 정확한 시기는 그해 제공되는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산악기상 정보 확인도 중요하다. 기상청 날씨누리에는 전국 주요 산의 산악날씨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산의 기온, 강수 확률, 바람 세기, 체감온도 등을 미리 확인하면 날씨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가을 산은 낮에는 따뜻하지만 아침저녁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에, 방풍복과 여벌의 겉옷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에서는 체온 유지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벽 산행이나 장시간 체류 시에는 보온 대책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산은 평지보다 기온 하강 속도가 빠르고, 새벽이나 아침에는 기온이 이슬점에 도달해 안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안개의 미세한 물방울이 바위 표면이나 낙엽, 흙 등에 붙어 수막을 형성해 미끄러짐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실족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이제 단풍은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온과 일조, 강수 패턴, 이상기후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자연의 보고서다. 붉게 물든 산속을 걷는 일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동시에 지구가 보내는 계절의 메시지를 읽는 행위이다. 올가을,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단풍이 들려주는 기후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이미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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