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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 |
1990년 통일은 독일 국민에게는 역사적 감격이었지만, 동시에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 당시 서독은 세계 유수의 산업국가였으나,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로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두 지역은 같은 민족이었지만 경제적 격차는 엄청났다. 더욱이 통화통합으로 동독 화폐가 서독 마르크로 바뀌면서,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같은 임금이 지급됐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동독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으며, 대규모 실업 사태가 이어졌다. 국가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독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동독 재건에 투입했다.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를 새로 건설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했지만, 그만큼 재정부담이 커지며 통일 직후 독일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독일은 위기를 끝내 기회로 바꿨다. 2000년대 초반, 슈뢰더 정부가 단행한 '하르츠 개혁(Hartz Reform)'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복지 체계를 개편하자 기업 경쟁력은 점차 회복됐다. 특히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진 기계·자동차·화학 산업은 다시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수출은 늘어나고, 경제는 다시 살아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독일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다. 제조업을 굳건히 지켜낸 덕분이었다. 금융과 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산업 기반을 유지해 온 것이 위기의 순간 힘을 발휘했다.
동독도 서서히 달라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드레스덴은 통일 후 첨단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 '실리콘 작센(Silicon Saxony)'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세계적인 기업 TSMC가 진출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게 됐고, 동시에 프라우엔 교회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며 관광산업도 성장했다. 과거 폐허였던 도시가 첨단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바뀐 모습은 독일 통일의 성과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공동체 의식이다. 독일 사회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직함, 근면함, 규율을 지키는 태도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기보다는, 다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둘째, 체계적인 직업교육이다. 독일은 직업학교와 기업 현장을 결합한 '이중 교육제(Dual System)'를 운영한다.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고, 기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다. 이 제도를 통해 숙련된 기술 인력이 꾸준히 배출됐고, 이는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이른바 '마이스터 제도'라 불리는 직업교육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셋째, 장기적 안목을 가진 정책이다. 독일은 청년 실업, 인구감소와 같은 난제를 단기적인 처방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가족 정책, 보육 정책,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그 결과 출산율은 점차 회복됐고, 사회는 안정화됐다.
이번 독일 여행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지금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경제 구조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인구문제와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독일이 보여준 것처럼 공동체적 합의, 직업교육의 강화, 장기적 정책의 일관성이다. 통일 직후 고통을 넘어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로 서 있는 독일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지금 우리가 독일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다.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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