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통일과 재도약의 독일,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통일과 재도약의 독일,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5-09-09 17:01
  • 신문게재 2025-09-1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이용상 우송대 산학협력부총장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
이번 여름, 오랜만에 독일을 다시 찾았다. 독일은 나에게 늘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나라다. 철도와 교통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실험은 언제나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이번에는 옛 동독지역을 여행하며 통일 이후의 발전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 통일은 독일 국민에게는 역사적 감격이었지만, 동시에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 당시 서독은 세계 유수의 산업국가였으나,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로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두 지역은 같은 민족이었지만 경제적 격차는 엄청났다. 더욱이 통화통합으로 동독 화폐가 서독 마르크로 바뀌면서,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같은 임금이 지급됐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동독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으며, 대규모 실업 사태가 이어졌다. 국가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독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동독 재건에 투입했다.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를 새로 건설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했지만, 그만큼 재정부담이 커지며 통일 직후 독일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독일은 위기를 끝내 기회로 바꿨다. 2000년대 초반, 슈뢰더 정부가 단행한 '하르츠 개혁(Hartz Reform)'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복지 체계를 개편하자 기업 경쟁력은 점차 회복됐다. 특히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진 기계·자동차·화학 산업은 다시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수출은 늘어나고, 경제는 다시 살아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독일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다. 제조업을 굳건히 지켜낸 덕분이었다. 금융과 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산업 기반을 유지해 온 것이 위기의 순간 힘을 발휘했다.

동독도 서서히 달라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드레스덴은 통일 후 첨단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 '실리콘 작센(Silicon Saxony)'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세계적인 기업 TSMC가 진출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게 됐고, 동시에 프라우엔 교회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며 관광산업도 성장했다. 과거 폐허였던 도시가 첨단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바뀐 모습은 독일 통일의 성과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공동체 의식이다. 독일 사회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직함, 근면함, 규율을 지키는 태도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기보다는, 다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둘째, 체계적인 직업교육이다. 독일은 직업학교와 기업 현장을 결합한 '이중 교육제(Dual System)'를 운영한다.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고, 기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다. 이 제도를 통해 숙련된 기술 인력이 꾸준히 배출됐고, 이는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이른바 '마이스터 제도'라 불리는 직업교육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셋째, 장기적 안목을 가진 정책이다. 독일은 청년 실업, 인구감소와 같은 난제를 단기적인 처방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가족 정책, 보육 정책,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그 결과 출산율은 점차 회복됐고, 사회는 안정화됐다.

이번 독일 여행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지금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경제 구조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인구문제와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독일이 보여준 것처럼 공동체적 합의, 직업교육의 강화, 장기적 정책의 일관성이다. 통일 직후 고통을 넘어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로 서 있는 독일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지금 우리가 독일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다.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두고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2. 대전 여야,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놓고 '공방전'
  3. 대전교도소·대전의사회 협력,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4. 32사단, 대둔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착수
  5. 90년 역사 품은 테미오래,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1. '대학생이 제안한 위성을 우주로'…항우연 경연대회 7개 팀 선정
  2.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3. [세상보기] 각자도생의 시대
  4. 탈석탄 충남, 신재생 전환 이익 절반은 역외로
  5. 대전 서구 '구청장 직통문자' 100일…민원 999건 접수

헤드라인 뉴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가 전국 교정시설 중 처음으로 스마트 메디컬센터를 구축하고 대전시의사회와 협력해 수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안과와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과에 대한 시설 내 전문진료를 시작한다. 2005년 교정시설의 원격진료가 허용된 이후 수용자 의료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도전으로 여겨져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는 22일 유성구에 위치한 대전교도소에서 스마트 메디컬센터 개소식을 갖고 새롭게 조성하고 확보한 시설과 장비를 소개했다. 이날 법무부 교정본부 권창모 의료과장과 이동철 의료 교정관이 참석하고,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주관으로 임정혁..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시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시설 직원이 구속 송치됐다. 경찰이 초기 수사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하며 재수사 돌입한 지 5개월 만이다. 세종경찰청 강력마약범죄수사대는 시설 직원 A(30대) 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3일 대전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5월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시설 내 목격자 진술과 A 씨의 근무 시간 등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확보하고 지난 7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A 씨에게 무혐의 처분..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대전과 세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이 797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한국어학급은 한 곳도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과 충북이 각각 한국어학급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전·세종은 고교 단계의 한국어 교육 기반이 부족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전지역 고교 이주배경학생은 655명, 세종은 142명으로 집계됐다. 두 지역의 학생 수를 합하면 797명이지만, 고등학교 한국어학급은 모두 운영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