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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광 원장 |
퇴직 후에도 돈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당장 돈에 쪼들리면 허드렛일이라도 찾느라 다른 걱정을 할 틈이 없다. 재산이 많아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돈 되는 일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불안감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더 커진다.
선진국에서는 연금도 여유롭고, 모은 돈에 맞게 각자 알아서 사는 문화가 정착되어 불안이 덜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은퇴 세대인 베이비부머는 대부분 부모 부양과 자식 교육으로 남은 재산이 별로 없고 연금도 쥐꼬리다. 세상이 바뀌어 더는 자식에게 노년을 의탁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연금과 남은 돈은 뻔한데, 여전히 부모와 자식에게 돈이 들어가는 은퇴자도 많다. 얼마나 더 살지, 돈은 또 얼마나 더 들지 가늠할 수도 없으니 더 불안하다. 진짜 돈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덜 내고 자식에게 물려줄 방법을 고민한다는데, 다른 세상 사람 이야기 같아 실감이 안 난다.
최근 노인연령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이는 노인을 재정 부담 감축 차원에서만 바라본 측면이 크다. 굳이 노인이라는 나이 기준을 정하지 않고도 사회적 배려 대상이 되는 가난하거나 병약한 고령층을 선별해 지원할 수 있다. 생산연령 인구가 적은 고령 사회에서 나이가 기준을 넘었다고 모두 국가만 쳐다보게 해서는 복지 국가로 가기 전에 국가 재정이 먼저 거덜 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빚을 내어 아파트 투자에 올인하는 젊은이가 많다. 투자 수요가 몰리니 집값은 오르는데, 집이 있는 이는 대출금 상환에, 집이 없는 이는 오르는 월세에 쓸 돈이 없다. 고령층은 현금이 있으나 미래가 불안하니 돈을 쓰지 않는다. 이래저래 모두가 돈을 쓰기 어려우니 경기가 좋을 리 없다. 그런데도, 주변에선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느니 갭투자로 산 집이 얼마나 올랐느니 하니깐 돈을 버느라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이 우스워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땅들이야 그래도 직장을 이탈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은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통계청의 분석에 따르면 60대는 고용률이 20, 30대보다 높고 재산도 더 많다고 한다. 연령대별 보유 금융 자산 그래프는 60대에서 정점을 이룬다. 고령층은 나이가 들어도 돈을 계속 모으는 경향이 있어 10년 후에는 70대가 된 이들이 가장 돈이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사회가 지속 가능할까? 이런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아이를 낳으라 할 수 있을까?
통계청은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40%를 넘을 것이라 추계한다. 이러한 초고령 사회로 변하기 전, 지금 당장 고령자들도 생산과 소비의 주류로 활용하는 역발상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단순노동이 아닌 퇴직자의 경력을 활용한 재취업 일자리를 늘리고, 고령층이 적당하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 OECD 평균보다 5세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반면에 퇴직 연령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50대부터 은퇴하는 조로 사회에서는 퇴직자들도 계속 일하고 돈도 적절하게 쓰도록 해줘야 경제가 돌아간다. 국가적으로도 곧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될 고령자 중 절반이라도 적극적으로 생산과 소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람의 일생은 대략 30년 배우고, 30년 일하며, 30년 여생으로 산다고 삼분할 수 있다. 30년을 배워 30년 동안 써먹으니 어릴 적 배움은 충분하다 하겠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이 아무런 준비도, 교육도 없이 나머지 30여 년을 맞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 사람들이 주 일터에서 퇴직하기 시작하는 50세 무렵부터 은퇴 후 삶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건강과 의지가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달릴 수 있는 은퇴자의 활동 트랙과 그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리그를 만들어줘야 이 사회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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