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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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나는 고발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9-05-07 16:20
  • 신문게재 2019-05-08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다산 정약용은 강진의 유배지에 있을 때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귀양살이를 떠나던 길이 지금의 과천 즈음에 이르자 아내가 막내아들을 품에 안고 남의 가게 앞에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미 품에 안겨서 방실 웃던 막내아들의 눈매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간장을 쥐어짜게 하는 서러운 일이었습니다. 멀리 유배지 바닷가 변두리에 홀로 앉아 아들의 부음에 비참하고 또 비참하다며 통곡했습니다. 1802년 12월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글입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정유년 재침한 왜적의 손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평소 사실만을 담담하게 기록하던 그의 일기에 그는 아들의 부음을 접하고 가슴이 찢어지고 간담이 떨어졌다고 적었습니다.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해가 빛을 잃었으며 하룻밤을 보내기가 한 해와 같아 오로지 부르짖으며 슬퍼할 뿐이라고 썼습니다. 그마저 전란 중의 장수라 나흘이 지나도록 마음 놓고 울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강막지의 소금 창고에 가서 흐느껴 통곡했습니다. 사흘 후 저녁나절에 한 되 남짓한 코피가 쏟아졌습니다. 난중일기 정유년 시월 십사일부터 엿새 동안의 기록입니다.

어머니를 고발합니다. 아들이 죽으면 덤덤한 아비조차 그와 같이 통곡하거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당하여 구슬피 울지 않았습니다.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지도 않았습니다. 상중의 어미 모습을 버리고 외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처참하게 일그러져 죽임을 당한 아들의 관 앞에 통한의 무릎을 꿇는 대신 고급 양복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허리를 굽혔습니다.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격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아들이 묵묵히 견디며 속내에 감춰두었던 것들을 공개했습니다. 먹거나 잠을 청하는 대신 일에 매진했습니다. 일 하나를 마치고 어머니는 조금 웃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아들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어머니를 고발합니다. 아들은 1999년 여섯 살 나이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한과 눈물로 나날을 견뎌냈습니다. 15년 동안 아들의 죽음을 밝히려는 한 가지 일에 몰두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밝히고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를 처벌하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15년 20일이 지난 후, 어머니는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아들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어머니를 또 고발합니다. 막내아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와 맨 발로 한 달을 예저기 쏘다니셨던 어머니였습니다. 참혹한 아들의 주검을 안고 죽음 하나를 감당하기도 어려울진대 위로 두 아들마저 데려가 너희 역사를 위해 써도 좋다고 말씀하신 어머니를 고발합니다.



또 고발합니다. 사람을 상하게 한 죄로 잡혀가 사형을 언도받은 아들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하신 어머니를 고발합니다. 입고 먼저 가라며 수의를 보내 온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고발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하여 깊은 수심의 어두운 바다에 3년을 가만히 누워있던 딸들의 배를 기어이 끌어올린 어머니들을 고발합니다. 6835톤 146미터짜리 배를 눕혀서 인양하고 바로 세운 연약하나 무모한 어머니들입니다.

스물 네 살 청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산업안전보건법 이른바 '김용균법'이 28년만에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울지 않았습니다. 여섯 살에 죄 없이 죽은 태완이 어머니 박정숙씨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돌멩이를 매달고 눈에 최루탄이 박혀서 죽은 김주열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오게 하는 데 한 생을 바쳤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수의를 지어 보냈습니다.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의 엄마 이금희씨와 박은미 씨는 가라앉을 뻔한 진실을 인양하고 규명하는데,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다른 어머니의 아들과 딸들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삶을 바치고 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시고도 어머니들은 늘 "해 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되시는 이 땅의 모든 분들에게 삼가 옷깃을 여미고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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