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대전의 할아버지 한 분은 1941년 보국대로 동원되었다. 일본의 그 제철소가 운영하는 다른 공장에서 일했다. 재료를 용광로에 넣고 철을 가마에 넣는 노역에 종사했다. 용광로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험한 상처를 입었다. 석 달 병상 끝에 겨우 상처가 아물었다.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일본의 군인으로 징병이 되어 고베 부대에 배치되었다. 네 번째 군산 할아버지 역시 일본 그 회사의 또 다른 공장에 배치되었다. 고된 노역에 공장을 벗어나려다가 잡혔다. 구타를 당한 일주일 동안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다. 다른 세 분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야 겨우 고향에 돌아왔다.
할아버지들은 1997년 제철회사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일본 법원은 1965년의 '청구권협정'을 내세워 할아버지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확정했다. 할아버지들은 2005년 한국의 법원에 호소했다.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할아버지들에게 패소 판결했다. 일본 판결은 효력이 있고 일본 회사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2009년 서울고법은 할아버지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고 신일본주금은 법적 책임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2013년 7월 서울고법은 할아버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할아버지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할아버지들이 대한민국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13년 9개월이 지난 판결이었다. 일본의 오사카지방법원에 처음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계산하면 21년 만에 겨우 거둔 소식이었다. 법원이 차일피일 판결의 선고를 미루면서 세 사람의 할아버지가 고인이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 할아버지는 아흔 여덟 살이었다.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재상고심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식민지배, 침략전쟁을 수행한 일본 회사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지적했다. 강제로 동원된 할아버지들의 위자료청구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할아버지들이 밀린 임금을 달라거나 보상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로서 정신적인 고통의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직후 아베 정부는 동해와 남해 이어도 해상에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이번 달에 자국의 자기 정치를 위해 한국의 기업을 상대로 경제적 도발을 계획적으로 자행했다. 아베 내각은 침략전쟁을 위한 군대를 두지 못하도록 규정한 평화헌법까지 뜯어고쳐서 군사적으로 대국화하려는 시도를 간단없이 해 왔다.
이 엄중한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론은 등불처럼 시민을 이끌어주어야 한다. 날조한 거짓 뉴스로 시민을 기망하거나 상업적 선동으로 사람을 자극하고 오도할 경우 언론은 스스로 광범하고 강력한 불매운동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언론의 진짜 언론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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