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동네마다 북클럽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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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동네마다 북클럽 어때요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19-07-22 13:41
  • 신문게재 2019-07-23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고전 읽기에 관심 있는 또래 여성들 몇몇이 모여 방학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째다. 책 이름은 숱하게 들어 보았지만 막상 읽지 못했던 고전들, 혼자 읽기엔 버거운 고전들, 이를테면,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푸코의 '성의 역사', 보부아르의 '제 2의 성' 등등, 모두 8권 정도의 고전들을 그간 읽었다. 참여 인원은 들쑥날쑥 했지만, 평균 예닐곱 분 정도가 매주 참석했다.

속속들이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각자 챕터별로 내용을 정리/발제/토론하면서, 작가의 전체적인 주장을 이해하고, 논증의 타당성을 짚어보는 정도다. 그래도 혼자서는 절대로 끝내지 못했을 책들을 결국 끝장내는 성취감, 똑같은 텍스트에 대한 놀랍게도 색다른 리딩(reading) 경험에 의한 관점의 확대, 텍스트의 지식을 개인적 경험과 연결/토론하면서 내 삶의 지식으로 내면화하기, 무엇보다 여성들만의 내밀한 공동체를 갖는다는 기쁨이 컸다. 여성들만의 모임은 위계 없는 수평적 관계, 거침없는 솔직함, 게다가 언제나 먹거리가 넉넉해서 참 좋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이름하여 일종의 북클럽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한 사람이 통상 두 세 개의 북클럽에 가입한다고 한다. 일본학자들의 경우도 서 너 개의 스터디모임 참여가 보통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평일 1인당 한국인의 평균 독서 시간은 6분이라고 한다. 1999년에는 9분이었는데 그나마도 줄은 셈이다. 학자의 경우는 어떨까. 통계는 없지만 대충 어림잡아도 스터디모임에 참여하는 학자들이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혼밥/혼술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내면의 헛헛함을 독서와 어울림으로 채우려는 욕구가 늘어가면서, 요즘 한창 북클럽이 늘어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외국의 숫자에는 턱없이 부족할 게 뻔하다.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독서는 텍스트를 통해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내면서 이들을 새롭게 재조합하는 과정인데, 이때 고독은 필수인 까닭이다. 그러나 독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독한 독서를 통해 재조합된 지식은 반드시 말과 글로 표현되어야 하고, 말과 글로 표현된 지식은 반드시 토론을 통해 그 타당성을 점검받아야 한다. 토론 없는 지식은 독선으로 흐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리동물이다. 함께 할 때 훨씬 행복하다. '밀실'만큼이나 '광장'도 필수다. 책도 함께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다. 밀실에서 홀로 책 읽고, 이 후 광장에서 토론하는 것이 독서의 완성이다. 행복한 밀실과 광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북클럽이 아닐까?

'포스트 자본주의'의 저자 히로이 요시노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역사동안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이뤄냈고, 그때마다 생산을 양적으로 확대 성장시켰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언제나 더 깊은 인간의 내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정상기'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출현했던 소위 '축의 시대'는 농업혁명 이후 '정상기'의 산물이라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말하길, "21세기 후반을 바라보는 세계는 고령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인구와 자원소비도 균형을 찾아가는 등, 정상기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한다. 결국 우리 시대의 과제는 양적 확대의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내면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리동물로서 어울려 함께 내면을 돌보는 북클럽, 그런 북클럽을 동네마다 하나씩 만들어보면 어떨까. 구심점 없는 모임에서 공연한 뒷담화가 공허했다면, 책을 읽고 토론하는 편이 한결 뿌듯하지 않을까.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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