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드라이버](저자 우선자 & 출간 하영인)는 이를 차용하여 "지금까지 이런 감동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인가 팩트인가?"라는 찬사까지 동원하게 만드는 감동의 휴머니즘 저서(著書)이다.
1950년 6.25전쟁이 한창일 때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종갓집 큰아버지의 보증으로 인해 아버지마저 문전옥답까지 다 빼앗겼다. 그로부터 전쟁보다 처참하고 극명한 가난과 형극의 고통이 폭풍한설로 몰아친다.
이름 모를 병에 걸린 어머니, 그럼에도 외손녀 집안 식구들을 외면하는 외할머니는 저자의 가족을 모질게 쫓아낸다. 네 번이나 옮겨 다닌,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초등학교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십리도 넘는 학교 길을 걸어 오가면서도 점심 도시락은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하였다. 고무신마저 낡아 찢어져 바느실로 꿰매어 신고 다녔다.
그러자 반 아이들이 놀려 학교를 아예 빼먹는 날이 더 많았다. 이 부분에서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소년가장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고난의 시기가 떠올라 동병상련에 마음이 찢어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렵사리 구한 돈으로 보리쌀을 사오라고 했다. 그 돈으로 고무신을 샀으나 당장 저녁부터 식구들이 굶어야 하는 현실에 기가 막혔다. 고무신을 되돌려주고 보리쌀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한스러워 서럽게 울었다.
인생길이 그처럼 가시밭길의 점철이었다면 남편 복(福)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마저 사치였다. 1966년 어느 봄날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그만 성폭행을 당했다.
임신까지 시켜놓고 사라진 12살 연상의 그 남자를 겨우 만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저급(低級) 마인드의 폭력과 야만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저자는 소중한 생명을 버릴 수 없다는 사명감에 동냥젖(평소 먹은 게 없어 젖이 나올 수 없었기에)까지 얻어 먹여가며 아이를 길렀다.
이 부분 또한, 생모의 가출 이후 동네 유모할머니에 의해 양육되면서 심청이처럼 동냥젖으로 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가 자메뷰(jamais vu)로 다가와 눈앞이 안 보였다. 참고로 '자메뷰'는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경험하거나 잘 알고 있는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기억의 착각현상으로, 처음으로 경험한 것들이 이미 과거에 체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자뷰(deja vu) 현상의 반대 개념이다. 다른 말로 미시감(未視感)이라고 하며, 보통 몽환 상태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끝없는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아이는 늘어나 셋이나 되었지만 남편은 1986년에 여우같은 여자에게 홀려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자는 그마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더욱 지독하고 치열한 삶에 몰입한다.
천신만고 끝에 계주(契主)가 되어 돈놀이로 여유를 잡는가 싶었으나 세상은 사기꾼과 악마들이 아직도 더 많았다. 하루가 지나면 지옥 같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다.
세상이 싫어져서 승용차 안에 유서를 남기고 방파제에 올랐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만류하는 횟집 식당 주인이 있었다. 이후에도 간난신고와 험산준령의 가파른 절벽과 협곡은 무시로 저자의 앞을 막고 발을 묶었지만 다시는 굴복하지 않았다.
중고 봉고차를 사서 학원 지입 안전운전의 '할머니 드라이버'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아울러 아들의 권유로 종교를 바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55년 만에 처음 만난 교회였으나 드디어 저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6년 동안 2000여 통의 기도편지를 쓰고 신약,구약 성경 말씀들을 73번이나 통독하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뜻까지 깨닫게 해주셨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저자의 어머니는 35세 한창 나이 때 병에 걸린다. 집 주인아주머니조차 "너의 엄마는 곧 죽을 것 같으니 약이라도 한 번 먹이고 저승으로 보내라"고 말한다.
열차비 12원이 없어 강릉도립병원까지 걸어가 의사에게 사정사정하여 엄마 약을 겨우 타왔다. 그런 저자의 효심이 결국엔 어머니를 89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시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처절한 굴곡의 인생을 잡초처럼 살아왔다.
전쟁과 가난, 도망간 남편, 배신만 일삼는 세상…… 이러한 암흑의 틈바구니 속을 버틴 한 노인의 처절한 삶을 담담히 기록했다. 17년에 걸쳐 수백 명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드라이버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아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저자의 글은 삶의 굴곡을 견뎌온 어르신들에게 공감을, 이제 막 삶의 무게를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겐 희망을 선물한다.
한 노인의 삶이라고 해서 늙고 빛바래고 희미한 기억이 아니다. 노인의 삶에는 도서관 하나 만큼의 삶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짧지만 무거운 울림과 교훈을 던진다.
또한 우리 삶의 무게를 견디고 남는 것은 결국 용서와 사랑임을 화두로 제시한다. 아내의 지인 중에 '우 씨'(禹氏)가 있다. 사위가 우 씨인 까닭에 두 사람은 평소 농담으로 사돈지간(査頓之間)이라며 아주 절친하다.
그래서 끝으로 나는 이 책의 저자께 이런 덕담을 드리고자 한다. "사돈어르신~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은 이제 잊으시고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수를 놓으시며, 후일엔 꼭 신묘막측의 행복만 가득한 천국에 도착하시길 응원드립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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