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49. 신묘막측(神妙莫測)

  • 문화
  •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49. 신묘막측(神妙莫測)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 승인 2020-02-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2019년에 영화 <극한직업>이 유행시킨 명대사다. <명량(17,615,658명)>에 이어 누적관객 수 16,265,658명을 기록하면서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에 올랐다.

[할머니 드라이버](저자 우선자 & 출간 하영인)는 이를 차용하여 "지금까지 이런 감동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인가 팩트인가?"라는 찬사까지 동원하게 만드는 감동의 휴머니즘 저서(著書)이다.

1950년 6.25전쟁이 한창일 때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종갓집 큰아버지의 보증으로 인해 아버지마저 문전옥답까지 다 빼앗겼다. 그로부터 전쟁보다 처참하고 극명한 가난과 형극의 고통이 폭풍한설로 몰아친다.

이름 모를 병에 걸린 어머니, 그럼에도 외손녀 집안 식구들을 외면하는 외할머니는 저자의 가족을 모질게 쫓아낸다. 네 번이나 옮겨 다닌,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초등학교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십리도 넘는 학교 길을 걸어 오가면서도 점심 도시락은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하였다. 고무신마저 낡아 찢어져 바느실로 꿰매어 신고 다녔다.

그러자 반 아이들이 놀려 학교를 아예 빼먹는 날이 더 많았다. 이 부분에서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소년가장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고난의 시기가 떠올라 동병상련에 마음이 찢어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렵사리 구한 돈으로 보리쌀을 사오라고 했다. 그 돈으로 고무신을 샀으나 당장 저녁부터 식구들이 굶어야 하는 현실에 기가 막혔다. 고무신을 되돌려주고 보리쌀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한스러워 서럽게 울었다.

인생길이 그처럼 가시밭길의 점철이었다면 남편 복(福)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마저 사치였다. 1966년 어느 봄날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그만 성폭행을 당했다.

임신까지 시켜놓고 사라진 12살 연상의 그 남자를 겨우 만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저급(低級) 마인드의 폭력과 야만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저자는 소중한 생명을 버릴 수 없다는 사명감에 동냥젖(평소 먹은 게 없어 젖이 나올 수 없었기에)까지 얻어 먹여가며 아이를 길렀다.

이 부분 또한, 생모의 가출 이후 동네 유모할머니에 의해 양육되면서 심청이처럼 동냥젖으로 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가 자메뷰(jamais vu)로 다가와 눈앞이 안 보였다. 참고로 '자메뷰'는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경험하거나 잘 알고 있는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기억의 착각현상으로, 처음으로 경험한 것들이 이미 과거에 체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자뷰(deja vu) 현상의 반대 개념이다. 다른 말로 미시감(未視感)이라고 하며, 보통 몽환 상태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끝없는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아이는 늘어나 셋이나 되었지만 남편은 1986년에 여우같은 여자에게 홀려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자는 그마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더욱 지독하고 치열한 삶에 몰입한다.

천신만고 끝에 계주(契主)가 되어 돈놀이로 여유를 잡는가 싶었으나 세상은 사기꾼과 악마들이 아직도 더 많았다. 하루가 지나면 지옥 같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다.

세상이 싫어져서 승용차 안에 유서를 남기고 방파제에 올랐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만류하는 횟집 식당 주인이 있었다. 이후에도 간난신고와 험산준령의 가파른 절벽과 협곡은 무시로 저자의 앞을 막고 발을 묶었지만 다시는 굴복하지 않았다.

중고 봉고차를 사서 학원 지입 안전운전의 '할머니 드라이버'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아울러 아들의 권유로 종교를 바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55년 만에 처음 만난 교회였으나 드디어 저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6년 동안 2000여 통의 기도편지를 쓰고 신약,구약 성경 말씀들을 73번이나 통독하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뜻까지 깨닫게 해주셨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저자의 어머니는 35세 한창 나이 때 병에 걸린다. 집 주인아주머니조차 "너의 엄마는 곧 죽을 것 같으니 약이라도 한 번 먹이고 저승으로 보내라"고 말한다.

열차비 12원이 없어 강릉도립병원까지 걸어가 의사에게 사정사정하여 엄마 약을 겨우 타왔다. 그런 저자의 효심이 결국엔 어머니를 89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시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처절한 굴곡의 인생을 잡초처럼 살아왔다.

전쟁과 가난, 도망간 남편, 배신만 일삼는 세상…… 이러한 암흑의 틈바구니 속을 버틴 한 노인의 처절한 삶을 담담히 기록했다. 17년에 걸쳐 수백 명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드라이버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아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저자의 글은 삶의 굴곡을 견뎌온 어르신들에게 공감을, 이제 막 삶의 무게를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겐 희망을 선물한다.

한 노인의 삶이라고 해서 늙고 빛바래고 희미한 기억이 아니다. 노인의 삶에는 도서관 하나 만큼의 삶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짧지만 무거운 울림과 교훈을 던진다.

또한 우리 삶의 무게를 견디고 남는 것은 결국 용서와 사랑임을 화두로 제시한다. 아내의 지인 중에 '우 씨'(禹氏)가 있다. 사위가 우 씨인 까닭에 두 사람은 평소 농담으로 사돈지간(査頓之間)이라며 아주 절친하다.

그래서 끝으로 나는 이 책의 저자께 이런 덕담을 드리고자 한다. "사돈어르신~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은 이제 잊으시고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수를 놓으시며, 후일엔 꼭 신묘막측의 행복만 가득한 천국에 도착하시길 응원드립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사자성어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 5-2생활권 첫 주택 공급 포문…'우미린 센터파크'
  2. 세종시 청렴도 하락세, "공정한 인사와 상호 존중이 해법"
  3. 전신주 구리 접지선 훔쳐 한전에 2500만 원 손해 끼친 50대 검거
  4. 여름 반기는 주황빛 능소화
  5. 차주 없다고 압수한 블랙박스 '위법'… 반복되는 경찰 수사 절차 논란
  1. 오석진 대표 교육복지 공약 '대전 에듀카드'본격 추진 재원마련은 과제
  2. 갈고닦은 기술의 향연
  3. [대전MZ로그]"평범한 건 싫어요"···각양각색 소품을 나만의 취향대로 개성있게 꾸미는 2030 소비 트렌드
  4. 충남교육청 7월 1일자 인사 단행… 부이사관 승진 2명 등 총 652명 규모
  5.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아쉬움으로 끝난 월드컵 응원

헤드라인 뉴스


[대전MZ로그] ‘내 멋’대로 꾸민다… 2030세대 커스텀 열풍

[대전MZ로그] ‘내 멋’대로 꾸민다… 2030세대 커스텀 열풍

'평범한 볼펜과 모자, 신발 등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커스텀으로 변신~!'최근 SNS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 물건을 꾸미는 이른바 '꾸미기 문화'가 2030세대의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기자가 직접 가 본 대전 서구의 한 소품가게는 수많은 종류의 파츠와 와펜이 알록달록한 컬러를 빛내며 매장 한가득 진열돼 있어 소비자의 구매욕과 골라보는 재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게다가 키링과 신발, 가방, 볼펜 등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현장에서 바로 소품을 꾸밀 수도 있었다. 매장을 운영하는 임한나 씨는 "SNS와 팝업스토어를 꾸..

차주 없다고 압수한 블랙박스 `위법`… 반복되는 경찰 수사 절차 논란
차주 없다고 압수한 블랙박스 '위법'… 반복되는 경찰 수사 절차 논란

교통사고 현장에 남겨진 차량에서 경찰이 블랙박스 SD카드를 영장 없이 압수한 것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고 차량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류물 취급한 경찰의 절차 판단이 재판에서 부적절하다고 확인된 것이다. 과거 분실 휴대전화 마약 수사 사례처럼 경찰이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가 위법수집증거로 배척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현장 경찰의 증거 확보 역량과 적법절차 이해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대전지법에 따르면 제3-1형사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 위반(..

KAIST "세계 최초 양방향 `브레인 로봇` 기술 개발 나서"
KAIST "세계 최초 양방향 '브레인 로봇' 기술 개발 나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사람의 뇌 신호로 외골격 로봇을 실시간 제어하고, 로봇이 감지한 촉각·힘 정보를 다시 뇌에 전달하는 차세대 뇌-로봇 인터페이스 플랫폼 개발을 시작했다. 기계공학과 공경철·김정 교수 연구팀은 ㈜엔젤로보틱스와 함께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 플래그십 과제로 세계 최초 양방향 'Brain-to-Robot'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과제는 4월부터 2032년 12월까지다. 뇌 신호로 커서를 움직이거나 스마트폰을 제어하는 뇌 인터페이스 기술은 이미 인체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갈고닦은 기술의 향연 갈고닦은 기술의 향연

  • 대한민국 패배에 실망하는 축구팬…32강 진출 불투명 대한민국 패배에 실망하는 축구팬…32강 진출 불투명

  • 개원 준비로 분주한 대전시의회 개원 준비로 분주한 대전시의회

  • 여름 반기는 주황빛 능소화 여름 반기는 주황빛 능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