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기적을 낳은 사흘의 단식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폰트 작게
  • 폰트 크게

입력 2019-08-02 00:00 수정 2019-08-02 00: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
  • 밴드
  • 프린트
야! 내가 입학시험 장학생으로 합격이야! 가슴 뛰는 기쁨이 기적으로 올 줄이야!

합격의 기쁨에 장학생까지, 사흘 단식으로 학교 문을 두드린 재수생에게는 하늘이 만들어준 기적임에 틀림없었다.

중학교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 날 교정의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콰이강의 마치' 는 세상애서 가장 경쾌하고 즐거운 하늘의 소리였다.

장학생 합격으로 온통 들뜬 마음, 기쁨뿐인데 거기에 몸을 공중으로 붕붕 뜨게 하는 <콰이강의 마치>의 경쾌한 멜로디는 날개가 돋쳐 하늘을 날아오르게 하는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이루어낸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나무지게를 지고 풀이나 깎고 가축을 기르며 아버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9명 대식구에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 진학을 못한 것은 우리 집이 가난한 탓도 있지만 부모님께서 무학의 무지로 자식에 대한 교육열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들어가면 큰돈이나 들어가는 줄 아시고 수업료 감당 못할까봐 아예 중학교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하셨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는 한학에 능통한 할아버지 한 분이 서당을 차려 놓고 수업료 대신 추수 때에 보리 닷 말 벼 닷 말을 받고 한학을 가르치셨다.

부모님께선 나도 서당에 가서 한문이나 배우라고 하셨다. 서당에 가 보니 연령층이 다양하였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와 같이 국민학교 갓 졸업한 열세 살 안팎의 꼬마가 있는가 하면 많게는 서른이 넘은 결혼한 어른도 있었다.

나는 천자문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명심보감, 통감, 소학까지를 1년 6개월 만에 다 마쳤다. 그 당시 서당에서는 강(講)이란 것이 있었는데 1개월 단위로 한 달 동안 배운 것을 책 덮고 다 외는 것이었다. 나는 첫 번째 강에서 천자문 한 권을 다 암송하여 수염이 허연 훈장님의 총애를 받았다. 천자문을 암송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더 있어도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우리 서당에는 그럴 만한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훈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꼬마가 되었다.

국민학교 졸업한 지 2년이 가까워지는 어느 날 중학교가 너무나 가고 싶었다. 그 때 그 어린 나이에 생각을 한 것이 한학은 결혼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학문이지만, 학교 교육은 시기를 놓치면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으로 나는 중학교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중학교 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부모님은 싱끗도 안 하셨다. 불현 듯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단식을 결심했다. 하루 굶었더니 부모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틀째 굶었다. 부모님 눈치가 약간 달라졌다. 이제 조금만 더 굶으면 되겠다싶어 사흘째 단식으로 들어갔다.

애 굶어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부모님께서 중학교 보내 줄 테니 어서 밥 먹으라고 하셨다. 중학교 가라는 그 한 마디가 왠지 힘나는 보약인지 기운을 펄펄 나게 했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할 텐데 공부할 시간이 3개월밖에 안 남았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2년이나 놀은 데다가 공부할 시간이 얼마 없어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절박감에 졸업한 모교(장신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교장선생님께 애원하다시피 사정을 했다. 제가 졸업하고 2년이나 놀다가 사흘 단식으로 중학교 가라는 허락을 받았는데 저 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2년 후배 6학년 교실 뒷자리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나의 간절한 호소와 불타는 향학열에 교장선생님도 연민의 정을 느끼셨던지 꼬마의 간청을 들어 주셨다.

3개월 동안 하루 4시간 잠으로 코피 흘리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 때 나는 이웃집 공부 잘하는 2년 후배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중학교 들어갈 욕심으로,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2년 후배 집은 우리 집에서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밤에 공부를 할 때는 공부 잘하는 후배한테 지지 않으려고 그 집보다 먼저 불을 꺼본 적이 없다. 적어도 후배보다 매일 한 시간씩은 공부를 더 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3때보다도, 대학 때 취직시험을 준비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 어느 때보다도 공부를 지독히 했다. 그 때의 정신력이나 향학열은 그 누구도 못 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흘간의 단식이나, 졸업한 모교를 찾아가 청강생으로 공부하고, 밤낮으로 코피 흘리며 공부한 것이 그것을 대변해 주리라.

촌길 30리 거리 대흥중학교에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생각만큼 시험을 못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밥도 못 먹고 3일 단식한 결과가 허사가 되는 것 같아 말도 못하고, 꿍꿍 앓는 심정으로 입술을 태웠다. 시험 끝나고 2, 3일이 되니 고민으로 바짝 마른 입술이 까맣게 탔다. 초췌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지 어머니께서 날 꼭 껴안으시며 위안의 말씀을 주셨다.

어머니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시험보기 전날 목욕재계를 하시고, 동네 사람들이 길어가지 않은 논빼미 가운데의 샘물을 장독대에 정화수로, 그 옆에 쌀 한 대접을 놓은 채 아들의 입학시험을 위해 빌었다고 하셨다. 아침에 보니 정화수 물 대접 한가운데에 달걀만한 것이 소복이 솟아 있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좋은 징조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이 얼면 부피 팽창으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며,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과학 지식이 없어 어머니 말씀에 토 한 마디 달지 못하고 그대로 믿었다. 비록 과학문명시대에 걸맞지 않는 어머니의 무속신앙 얘기지만 나는 그 때의 어머니 정성과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이 도래했다.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는 수험생 대열에는 입술을 태우면서 가슴을 졸였던 나도 끼어 있었다. 평시에도 그랬지만 그날은 유난히 말수가 적은 나였다. 긴장한 초조감으로 합격자 방이 붙어 있는 벽 쪽을 향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강당 벽에는 수험생들을 웃게도 울리기도 하는 3대 1의 경쟁률 120명의 합격자 명단이 방(榜)으로 붙어 있었다.

합격자 명단을 검색하듯 살펴도 내 이름 석 자는 보이질 않았다. 처음 살필 때는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남상선이란 이름 석 자가 보이자 않자 얼굴은 어느새 사색이 돼가고 있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는 나에게 애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 상선아 너 인마 왜 그리 심난한 얼굴로 서 있니? > 그 말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새끼 헛소리한다며 가서 보라고 했다. 내가 두 번씩이나 살폈어도 보지 못한 이름이기에 재차 가서 볼 용기가 안 났다. 그래 다른 애를 시켜 다시 보고 오랬더니 갔다 와서 정말 내 이름이 있다고 했다. 그제서 죽다 살아난 얼굴로 애들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서 내 이름을 찾았다.

내 이름은 120명 합격자 명단 방(榜)에는 없었고 거기서 약 3m 왼쪽에 별지로 붙어 있었다. 말하자면 입학시험 합격자 가운데 < 오부근, 남상선, 강낙준 > 세 사람이 장학생 명단으로 붙어 있는 것이었다. 자랑스러운 이름 셋이 한나절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야! 내가 입학시험 장학생으로 합격이야!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로 그때 교정의 확성기에선 '콰이강의 마치' 행진곡이 경쾌한 멜로디로 발걸음을 춤추게 했다. 장학생 합격으로 마음은 온통 들뜬 기쁨인데'콰이강의 마치'행진곡은 날개가 돋쳐 하늘을 날아오르게 하는 기분이었다.

장학생 세 사람이 모두 재수생이어서 그 해는 대흥중학교 재수생의 해라는 말까지 나왔다.

내 마음은 그 동안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위에 몸부림치다가 천국 낙원으로 안내받은 기분이었다. 그날 나를 공중으로 붕붕 떠 날아오르게 했던 경쾌한 멜로디, 그'콰이강의 마치'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아니, 지금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

우리말에 기적이란 단어가 있다. 평상시 이루어질 수 없는 엄청나게 좋은 일이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기적은 누구나 만들 수는 있지만 아무한테나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하늘을 감동시킬 만한 정신력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2년 놀은 재수생이 배우겠다는 향학열 하나로 사흘 단식투쟁한 것이며, 졸업한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 뒷자리에서 청강생으로 배우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을 조른 것이, 밤잠 못자고 코피 흘리며 최선을 다한 공부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3개월만에 장학생 입학이란 기적이 나온 것이다.

기적을 낳은 사흘의 단식이 가져온 것처럼……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한 간절함, 진실한 마음, 마음을 쏟는 정성, 최선의 노력! 이것이면 기적도 피해가지는 못하리라!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포토뉴스

  • [포토]식탁에 올린 `크리스마스` [포토]식탁에 올린 '크리스마스'

  • 대전 유성구, 산타발대식 개최… "소원을 말해봐" 프로젝트 대전 유성구, 산타발대식 개최… "소원을 말해봐" 프로젝트

  •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제21대 총선 불출마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제21대 총선 불출마

  •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버스는 언제 오나?’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버스는 언제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