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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그리워할 수 있는 권리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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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5 00:00 수정 2019-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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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그립다'는 것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어떤 상대나 대상이 없이 그냥 그리워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대상은 주로 과거의 것이 대부분입니다. 과거의 것이 아닌 미래에 대한 그리움은 그립다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거나 바라는 것으로 그리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움은 특정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과거 어떤 사실이나 사안, 분위기, 풍경, 기분 등등 정말 많은 것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나 오랫동안 외국이나 객지에서 생활하면 어느 순간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해 주시는 따뜻한 밥이 그립기도 합니다. 요즘 같이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는 지나간 가을 속에 숨겨진 추억이 그립기도 하고 그 그리움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움이 주로 과거의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움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혹시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집을 찾거나 과거 추억 속에 있는 가을의 산사를 찾아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 자체를 그대로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은 아무리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경험하거나 소환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속에 숨어 있는 그리움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을 과거의 시점에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만든 그리움은 분명히 아닙니다. 다만 지나간 과거 속에서 우연히 생각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리움이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않고 지나간 시간들과 추억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은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움 그 자체를 그대로 회복하거나 재생할 수 있으면, 아마도 그것은 그리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움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움에는 안타까움이 동반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몹시 보고 싶고 그립지만 그것이 그대로 다시 나타날 수 없는 것이기에 바로 안타까움이라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실 그리움은 주로 과거에 것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억이나 추억 속에 숨어 있는 아련함이나 애틋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 아련함과 애틋함을 넘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것에 머무르게 되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우리의 마음을 괴롭고 힘들게 합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대부분 과거의 것에 대한 후회와 번뇌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고 어떤 과거의 사실을 그리워하는 것이 다시 만날 수 없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이라면 바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후회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그리움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것에 대하여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기가 쉽습니다. 바로 그리움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 그리움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하고 후회도 하게 되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고 개인적인 개인의 삶에서도 흔히 말하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결코 현실화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거나 실현된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이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변하는 과정에는 의도하지 않은 '만약'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움으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서 '만약'이라는 가정을 개입시켜 과거에 대해 스스로 돌이켜보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음에도 말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비록 안타깝고 후회스럽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리움을 어떤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이겨내고 그 그리움을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자기합리화'라고 해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움 속에 있는 후회와 안타까움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는 어쩌면 영영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은 이미 그 자체에 긍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그리움 속에 부정적인 것만이 가득하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움이 아니라 원망이나 분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 중에서 가장 큰 그리움은 이미 세상을 떠나서 다시 볼 수 없는 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의 것에 대한 그리움 중에서 어떤 장소나 상황 또는 물건 등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비록 과거의 것 그대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대상을 만날 수 있고 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에 대한 그리움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 그리움의 정도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그 분들과의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며 과거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아프고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것을 결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부모님 두 분과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의 묘소를 집 근처 현충원에 모셔서 매주 찾아뵙고 있지만, 아무리 부모님을 부르고 그리워해도 그곳에 서 있는 차가운 묘비는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그리고 매주 찾아뵐 때 마다 느끼는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살아계실 때 이렇게 매주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차갑게 비석으로만 뵐 수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쉽게 찾아뵐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후회에 대한 합리화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은 바로 과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또 다른 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리워할 수 있는 권리마저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과거의 어두운 틀 속에 갇혀 버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을 조금은 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비록 아무 말씀 없이 차가운 비석으로 뵙기는 하지만, 이번 주말에도 부모님을 뵐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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