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2022-05-26
얼개는 복잡하고, 장면은 스펙터클로 넘쳐나는데 서사는 툭툭 끊겨 전체를 한 줄기로 가늠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멀티버스 즉 두 개의 세계가 출몰하니 제목 말마따나 대혼돈입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한바탕 큰 소용돌이가 벌어졌던 꿈을 깬 주인공이..
2022-05-05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읍니다. 영화 '봄날' 역시 자식들과 배우자, 손주들, 이웃들, 이러저러한 관계로 엮인 사람들이 모입니다. 흩어져 있을 때 그들의 문제는 잠재적이었습니다. 감옥에 갔다가 막 출소한 장남과 부동산업자로 성공을 노리는 차..
2022-04-21
첫 장면. 영국 런던의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탑니다. 평범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문으로 마법사들이 드나들면서 환상의 세계를 펼칩니다. 또 지극히 평범한 여행용 가방을 열면 신비한 환상 속 동물이 나오고, 동물이 사는 세계로 연결됩니다. 특별한..
2022-04-07
영화는 첫 장면을 바다에서 시작합니다. 가난하고 영세한 어부 가족이 작은 배 위에서 일합니다. 아빠, 엄마, 오빠 그리고 딸. 앞의 세 사람은 농인(聾人)입니다. 그리고 딸인 루비는 듣고 말할 줄 아는 코다(Child of deaf adult)입니다. 이 평범해 보이는..
2022-03-24
과학관 B103호실. 오래 방치된 공간이 스승이자 아버지를 만나는 곳입니다. 진짜 선생님, 아버지가 아닙니다. 현실로는 인민군이라는 별명의 탈북자 출신 경비 아저씨일 뿐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부유한 현실 속 가치의 부재로 인한 결..
2022-03-10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노동운동과 근대화에 대한 지식인 계층의 성찰과 비판적 참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후 벌..
2022-02-24
근래 본 할리우드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란 무엇일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보는 내내 몰입감이 높으며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영화. 그러기 위해 시나리오가 치밀하고, 캐릭터가 분명하며, 스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2022-02-10
두 사내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빛이 두 사람을 갈라서 비춥니다. 한 사람은 빛 속에, 한 사람은 그림자 속에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만큼 극명한 대조는 없을 테지만, 그러나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림자로 인해 빛은 존재가 뚜렷하고, 빛의 이면에 그림..
2022-01-26
이 영화는 분명한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1900년대 초를 시작으로 하여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된 배경과 진행 과정을 담아냅니다. 또한 주인공과 동료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실존 인물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허구입니다. 이른바 팩션 영화입니다. 문제는 시대와 장소..
2022-01-13
이 영화는 세 겹의 공간과 그에 따른 이야기의 층위를 지닙니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연극으로 공연하는 무대, 연극의 연출가이자 주인공이 카세트테이프로 작품 전체의 대사를 들으며 연습하는 자가용 승용차, 그리고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삶을 닮은 허구인 연..
2021-12-30
영화를 보는 일이 쉽지 않았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늘상 우리 곁에 하늘처럼, 바람처럼 가까이 풍경으로 머물던 영화가 만들기도, 개봉하기도, 관람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훨씬 드물고 어렵게 다가온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진 한 해인가 합..
2021-12-16
좀 별나지만 저는 이름난 영화를 오래도록 뒀다가 나중에야 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터널스'도 그랬습니다. 예전에 '매트릭스'나 '본' 시리즈처럼 말입니다. 유달리 바쁜 것도 아니고 그새 다른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난 뒤 어쩌면 개봉 끝물에 가..
2021-12-02
시간은 지금부터 8천 년 뒤인 1만 년 대, 공간은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 우리는 이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상상의 시공간입니다. 그런데 거기 사람이 삽니다. 물론 사람 아닌 존재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토록 익숙하지 않은 행성이건만(적어..
2021-11-18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야구장을 서서히 보여줍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이 떠난 뒤에도 장소는 남아 그 시절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합니다. 구도(球都) 부산의 사나이, 롯데 팀을 우승으로 이끈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이 거기 다시 소환됩니다.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 마운..
2021-11-04
홍상수의 영화는 특이합니다.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습니다. 어쩌면 일상의 연장이라 할 만합니다. 대단한 사건이 없으니 그 속의 문제를 해결할 영웅도 필요치 않고, 갈등의 해소라 할 것도 없어 보는 이가 큰 쾌감을 얻지 못합니다. 거의 모든 그의 영..
2021-10-21
영화 속 악당에게 대체 왜 그러냐 물으니 "분노에 미쳐서 그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기괴한 외형에 엄청난 파괴력. 악당들이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현실을 닮았지만 상상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놀라운 발달로 인해 상상 속 장면들이 현실에서 생생하게 구현됩니다. 그러나 상..
2021-10-07
'007'은 1962년 이래로 25편이 만들어져 가장 오래된 시리즈입니다. 긴 세월 사랑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욕망을 고루 충족시킨 것은 아니지만, '007'은 자신만의 분명하고 확실한 의 위상을 지녀 왔습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6명의 역대 제임스 본드..
2021-09-23
'기적'은 추석에 즈음해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달이 밝고 아버지와 아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십수 년을 데면데면하게 살아온 사이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지냈는지 이야기합니다. 걸어온 길들을 되짚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결정적 순간을 회상합니다. 속 깊은 화해의..
2021-09-09
주인공 가이 역의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프리 가이' 대본을 읽고 감독인 숀 레비에게, "내가 대단한 비디오 게이머는 아니지만, 새로운 트루먼 쇼가 될 것 같다."고 했답니다. 확실히 이 영화는 1998년 작 '트루먼 쇼'의 패러디입니다. 인공 세트장에서 모든 상황과..
2021-08-19
눈을 뜨니 여름이 가버렸다고 영화가 말합니다.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날씨는 아직도 덥지만 거리엔 떨어진 나뭇잎이 뒹굴고 있습니다. 모처럼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을 찾았습니다. 김종재 감독의 '생각의 여름'은 여름 한 날 지루하게, 무기력하게, 그러면서 의미를 찾으며 시..
2021-08-05
흡사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 같습니다. 남한 사람, 북한 사람 나눠 앉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바듯이 랜턴과 촛불을 밝혀놓고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급박해진 소말리아 내전으로 먹을 게 넉넉지 않은 것은 한국 대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밥, 김치, 깻..
2021-07-15
이 영화는 블랙 위도우인 나타샤 로마노프의 전사(前史), 즉 이전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영웅의 이전 이야기를 보여준 본 시리즈를 떠오르게 합니다. '본 아이덴티티'(2002), '본 슈프리머시'(2004), '본 얼티메이텀'(2007) 등에 등장한 주인공은 이전의 영웅..
2021-06-17
높은 신분의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는 '백설공주'와 유사합니다. 아버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마냥 선량하지 않으며, 백마 탄 왕자에 의해 구원받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살아갑니다. 도..
2021-06-03
상반기도 마지막 달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배우 윤여정이야말로 상반기 대한민국의 주인공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미나리'(2021)로 많은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미나리' 속 연기보다 시상식에서의 수상 소감이 더 많은 주목을 받은 점은 특이합니다...
2021-05-20
영화의 원제목은 'The courier' 즉 운반원 혹은 배달원입니다. 60년대 초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배치 등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른바 냉전이 악화 일로를 걷던 때입니다. 수세기에 걸쳐 세계의 패권을 쥐었던 유럽 국가들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