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경제통] 돈과 시간과 소비와 욕망

  • 오피니언
  • 최충식 경제통

[최충식 경제통] 돈과 시간과 소비와 욕망

  • 승인 2017-03-01 12:18
  • 신문게재 2017-03-02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놀금(노는 금요일), 불금(불타는 금요일)도 아니고 반금(금요 오전 근무)도 아닌 어중간한 금요일(어금?)이 곧 생길 것 같다. 바닥으로 떨어진 소비를 활성화한다는 정부 방침 덕(또는 탓)이다. ‘근로시간 단축=소비 증가’라는 가설 위에 세운 이 대책은 잘 요약해도 금요일 4시 조기 퇴근해 돈 쓰라는 이야기만 남는다.

이 이야기는 기본전제부터 맹점이 발견된다. 금요일 2시간 일찍 퇴근해 가족과 쇼핑과 외식 등을 즐긴다는 발상은 단선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까먹은 사람들이라면 쓴웃음 지을 일이다. 지난 금요일 첫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치른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도 내수의 어려움이었다. 그 정책을 베낀 처지에서 생각할 점이 많다.

우선, 소비 의사결정은 다차원적 성향을 띤다는 사실이 무시됐다. 즐거움, 치장, 휴식, 기존 아이템 교체, 계획된 구매, 스트레스 해소, 취미, 자기위로 등이다. 팽팽 남아도는 시간도 소비 정당화의 사유지만 돈 없이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것이 본질이다. 꼭 필요한 상품인지 저울질하는 갈등적 구매자까지 늘었다. 영혼 없는 정책으로 비판받는 이유가 이 지점에 있다.

욕구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돈을 욕망하는 뇌의 시스템이 섹스나 초콜릿을 욕망하는 뇌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연관성을 밝혀내기도 했다. 실제 MRI 뇌 영상을 분석해보면 구분이 잘 안 간다. 미래를 위해 졸라맬 허리띠도, 현재를 위해 열 지갑도 없는 경제주체들의 뇌는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가계는 소비 불씨 살리기 카드와 엇나가며 냉장고 식재료가 소진되도록 시장을 안 보는 ‘냉장고 파먹기’를 한다. 사치품을 향한 소비 희구나 심리적 희열은 꿈도 못 꾸고 필수 소비재 단계에서 안 사는 습관을 유지하려고 그저 애쓴다. 작년 4분기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5.9% 줄고 올 1분기 0%대 중반이 점쳐질 만큼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다. 대기업은 최순실 사태에 휘둘리고 중소기업은 돈이 돌지 않아 ‘돈맥경화’를 호소한다. 자영업자는 폐업 위기에 내몰리며 서민은 L자형 장기 불황에 바닥 모를 불안을 안고 둥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IMF 금융위기 이후 최저인 소비자심리지수는 이 같은 소비자의 기본 생리와 유관하다. 특유의 근로 환경이 소비를 막는다는 판단은 환부를 제대로 못 짚은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는지 의심된다.

여기, 시간의 축과 돈의 축이 있다. 1사분면은 돈도 시간도 많은 경우, 2사분면은 돈 많고 시간 없는 경우, 3사분면은 돈과 시간 모두 없는 경우, 4사분면은 돈 없고 시간 많은 경우다. 정부 지침대로면 1사분면이나 2사분면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불황의 정체도 모른다. 정부가 이럴 때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일은 임금 증가, 재정·통화 정책, 투자와 일자리 등 근본 처방이어야 한다.

쇼핑 시간 챙기기가 가능하다면 그 다음일 것이다. 자유재량적 소비가 늘어야 경제 지탱에 유리한데 국민은 생필품까지 아낀다. 동굴밖에 호랑이가 있지만 정부가 있어 괜찮다는 감정이입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에서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보이자 선생님이 우리를…’이라는 아날로그 시대의 오래된 풍경이 그려진다. 신선도 떨어진 한국판 금요일이다.

정책에서도 왜곡은 왜곡을 부른다. 3·1절 태극기가 안타깝게도 대통령 탄핵 반대 깃발로 전락하면서 대한민국 대분열의 상징이 됐다. 비유가 들어맞진 않지만 일본의 재흥(再興) 전략을 따다 붙인 정책의 운명 역시 그처럼 흐를 수 있다. ‘알고/ 보면// 다들/ 딱히’라는 하상욱의 시 ‘불금’이 현상황에 딱 겹친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는 정책이 아니라면 지갑이 왜 닫혔는지를 먼저 숙고해야 현명하다. 소비절벽은 소득의 위기이지 시간의 위기가 아니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주말 사우나에 쓰러진 60대 시민 심폐소생술 대전경찰관 '화제'
  3. 의령군 자굴산 자연휴양림 겨울 숲 별빛 여행 개최
  4.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5. 대전우리병원, 척추내시경술 국제 교육 스파인워커아카데미 업무협약
  1. 대전 교사들 한국원자력연 방문, 원자력 이해 UP
  2.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3.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4. 낮고 낡아 위험했던 대전버드내초 울타리 교체 완료 "선제 대응"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헤드라인 뉴스


공백 채울 마지막 기회…충청권, 공공기관 유치 사활

공백 채울 마지막 기회…충청권, 공공기관 유치 사활

이재명 정부가 2027년 공공기관 제2차 이전을 시작하기로 한 가운데 대전시와 충남도가 '무늬만 혁신도시'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20년 가까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됐던 두 시도는 이번에 우량 공공기관 유치로 지역발전 모멘텀을 쓰기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배정에서 제외됐다. 대전은 기존 연구기관 집적과 세종시 출범 효과를 고려해 별도 이전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됐고, 충남은 수도권 접근성 등 조건을 이유로 제외됐다. 이후 대전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세종 이전과 인구 유출이 이..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