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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충식 논설실장 |
이 이야기는 기본전제부터 맹점이 발견된다. 금요일 2시간 일찍 퇴근해 가족과 쇼핑과 외식 등을 즐긴다는 발상은 단선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까먹은 사람들이라면 쓴웃음 지을 일이다. 지난 금요일 첫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치른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도 내수의 어려움이었다. 그 정책을 베낀 처지에서 생각할 점이 많다.
우선, 소비 의사결정은 다차원적 성향을 띤다는 사실이 무시됐다. 즐거움, 치장, 휴식, 기존 아이템 교체, 계획된 구매, 스트레스 해소, 취미, 자기위로 등이다. 팽팽 남아도는 시간도 소비 정당화의 사유지만 돈 없이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것이 본질이다. 꼭 필요한 상품인지 저울질하는 갈등적 구매자까지 늘었다. 영혼 없는 정책으로 비판받는 이유가 이 지점에 있다.
욕구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돈을 욕망하는 뇌의 시스템이 섹스나 초콜릿을 욕망하는 뇌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연관성을 밝혀내기도 했다. 실제 MRI 뇌 영상을 분석해보면 구분이 잘 안 간다. 미래를 위해 졸라맬 허리띠도, 현재를 위해 열 지갑도 없는 경제주체들의 뇌는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가계는 소비 불씨 살리기 카드와 엇나가며 냉장고 식재료가 소진되도록 시장을 안 보는 ‘냉장고 파먹기’를 한다. 사치품을 향한 소비 희구나 심리적 희열은 꿈도 못 꾸고 필수 소비재 단계에서 안 사는 습관을 유지하려고 그저 애쓴다. 작년 4분기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5.9% 줄고 올 1분기 0%대 중반이 점쳐질 만큼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다. 대기업은 최순실 사태에 휘둘리고 중소기업은 돈이 돌지 않아 ‘돈맥경화’를 호소한다. 자영업자는 폐업 위기에 내몰리며 서민은 L자형 장기 불황에 바닥 모를 불안을 안고 둥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IMF 금융위기 이후 최저인 소비자심리지수는 이 같은 소비자의 기본 생리와 유관하다. 특유의 근로 환경이 소비를 막는다는 판단은 환부를 제대로 못 짚은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는지 의심된다.
여기, 시간의 축과 돈의 축이 있다. 1사분면은 돈도 시간도 많은 경우, 2사분면은 돈 많고 시간 없는 경우, 3사분면은 돈과 시간 모두 없는 경우, 4사분면은 돈 없고 시간 많은 경우다. 정부 지침대로면 1사분면이나 2사분면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불황의 정체도 모른다. 정부가 이럴 때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일은 임금 증가, 재정·통화 정책, 투자와 일자리 등 근본 처방이어야 한다.
쇼핑 시간 챙기기가 가능하다면 그 다음일 것이다. 자유재량적 소비가 늘어야 경제 지탱에 유리한데 국민은 생필품까지 아낀다. 동굴밖에 호랑이가 있지만 정부가 있어 괜찮다는 감정이입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에서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보이자 선생님이 우리를…’이라는 아날로그 시대의 오래된 풍경이 그려진다. 신선도 떨어진 한국판 금요일이다.
정책에서도 왜곡은 왜곡을 부른다. 3·1절 태극기가 안타깝게도 대통령 탄핵 반대 깃발로 전락하면서 대한민국 대분열의 상징이 됐다. 비유가 들어맞진 않지만 일본의 재흥(再興) 전략을 따다 붙인 정책의 운명 역시 그처럼 흐를 수 있다. ‘알고/ 보면// 다들/ 딱히’라는 하상욱의 시 ‘불금’이 현상황에 딱 겹친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는 정책이 아니라면 지갑이 왜 닫혔는지를 먼저 숙고해야 현명하다. 소비절벽은 소득의 위기이지 시간의 위기가 아니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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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